매일신문

[매일춘추] 산사 순례

겨울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봄 공기가 대지를 힘껏 말아 올리는 3월 아침, 산창(山窓)을 연다. 잔가지에 얼어붙어 있던 눈꽃들이 사르르 녹아 옥토(沃土)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화사한 꽃과 싱그러운 풀잎, 나뭇잎들을 키우게 하는 저 물방울들은 생명을 키우는 힘이다.

겨울 산사는 산객(山客)이 붐비는 다른 계절과는 달리 절 다운 절로 돌아오는 시기이며 고행의 계절이다. 문(門)없는 문인 문무관에서 한철 치열한 안거 수행을 마치고 나면, 화사한 봄은 납자(衲子)들을 포근하게 맞는다. 그래서 봄은 산가에서 어느 계절보다도 그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 겨울 산승(山僧)은 혹독한 추위와 폭설 속에서도 무사히 순례를 다녀왔다. 회원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눈꽃에 잠긴 천년 고찰속의 아름다운 전각과 탑, 단청을 보며 자신들의 마음을 닦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때 아니게 '인혹(人惑)과 물혹(物惑)'의 집착에 끌려 몸과 마음을 상(傷)하기 쉽다. 순례는 이러한 집착을 버리고 허약한 심신(心身)을 깨끗하게 하는데 절대적인 효과가 있다. 또한 세상을 살면서 지은 업장(業障)을 지우고 세파(世波)에 시달려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인연들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업(業)을 짓는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해 제대로 참회(懺悔)조차 하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마치 시간을 여행하듯 느릿느릿 살아 온 것 같지만 찰나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린 세월에 스스로 놀란다. 그 순간 우리는 헛되게 보내온 세월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에 젖지만 그러나 이미 때는 늦다.

나의 은사인 청담스님은 평생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수행하셨다. 어떤 대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안주할 수 있는 자유자재한 주인으로 삶을 사는 법을 터득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산사 순례는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여행인 것이다.

산사 순례는 비단, 여행에만 그 목적을 두지 않는다. 설령,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산사에 숨은 아름다운 사찰을 찾아 마음을 씻는 것도 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큰 활력소가 된다. 그런 까닭에 지금 회원들은 전국 9개 법등(法燈)으로 늘었다. 대구경북에서도 수백 명의 회원들이 매달 순례에 나서고 있다.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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