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엄청나게 큰 암 덩어리를 달고, 52세 여자 환자가 평온관(대구의료원 완화의료·호스피스병동)에 입원했다. 워낙 큰 암 덩어리의 무게 때문에 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다. 다행히 그녀는 정신이 아주 맑았다. 내게 건넨 첫 마디는 "제발 안 아프게 해 주세요"였다. 아무런 치료도 없이 6년 동안 집에만 있다가 암성 통증이 너무 심해 입원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20대 두 딸과 아들이 보호자로 있다. 지난주에 입원 상담을 하러 온 보호자는 환자가 병원 가기를 너무 싫어한다고 했다. 머리에 암이 전이는 됐다고 했지만 상태가 그렇게 심각할 지 몰랐다. 환자의 통증평가점수는 10 이상(7은 아기 낳는 고통). 모르핀(마약성진통제) 5㎎을 주사하면서, 암 덩어리의 무게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첫 인사를 했다. 6년 전 그녀는 모 대학병원에서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이미 여러 장기로 전이된 상태라는 설명을 듣고 병원 치료를 포기한 뒤 자녀 결혼을 서둘렀다. 2년 전부터 머리와 골반에 전이된 종양이 커지면서 통증이 생겨 몇 군데 병원을 다녀보았다. 그러나 더 해줄 것이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 실망해서 병원 가기를 싫어하게 됐다.
그녀가 끔찍하게 많이 아픈 것은 의료진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치를 위한 치료는 힘들어도 통증과 증상조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으리라. 평온관 의료진은 그녀를 위해 여러 가지를 계획해야 했다. 한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 환자의 사진과 상태가 설명된 메일을 보내고 진료를 예약했다. 모르핀과 적당한 약물 투여도 시작했다. 불교 신자인 그녀를 위해 종교실에 연락해서 정법 스님과 연계해 드렸다. 병동 침대에 누워서 수계(受戒)의식을 받을 때 딸이 우는 것을 보았다. 입원 전보다 통증도 완화되고 머리 종양의 부기도 빠졌다. 눈을 살짝 떠서 딸과 함께 딸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에게 죽음이 아닌 삶을 느꼈다.
보건복지부 통증 관리 원칙에 따르면, 암 환자의 95~97%가 통증조절이 이루어 질 수 있다. 하지만 60~70% 환자는 적절한 통증치료를 받지 못한다. 의료진의 관심부족, 암성통증에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오해,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부 말기 암 환자들은 통증 조절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는 일은 당뇨나 고혈압 치료 이상으로 보람있는 일이다. 통증으로 찡그린 얼굴이 펴지고, 아파서 먹지 못했던 식사와 운동을 하게 된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통증평가점수 3 이하로 조절되면 환자는 안락사를 요구하지 않으며, 삶의 끝자락을 인간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가게 된다.
김여환(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김여환 센터장은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영남대 의과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8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고위과정 및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고교생 두 자녀를 둔 주부이며, 대구의료원에서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암관리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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