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종말을 기원한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현대식 버전은 어떤 것일까?
85세 김 할머니가 평온관(호스피스병동)에 매일 오셨다. 간암으로 입원한 65세 된 외아들을 간호하기 위해서다. 아들은 2006년 여름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을 진단받았다. 14차례 색전술을 실시했으나, 암은 올초 척추까지 전이됐다. 평온관에 올 무렵 하반신이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엉덩이에는 손바닥만한 욕창까지 있었다. 그래도 그는 식욕이 왕성했다. 김 할머니가 준비해온 여러 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가 불러주는 찬송가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루 종일 편안하게 지냈다.
호스피스병동에는 많은 사연이 있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식을 앞세우는 부모의 마음이다. 대부분 환자의 부모는 슬픔 때문에 병동에서 오열을 토한다. 죽음이 익숙해져가는 나로서도 놀라울 만큼 김 할머니는 침착했다.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5세 된 외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다. 병동에 예쁜 증손자들까지 오는 것을 보면서 "이 아들만 안 아프면 이젠 걱정이 없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진심이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할머니가 대신 아프겠지만, 그것 또한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다.
할머니는 약한 몸으로 간성혼수(간암환자에게 흔한 말기 증상)가 온 외아들의 관장을 도와주었다. 석양이 붉게 물드는 오후 회진 무렵, 아들 옆에서 하얗게 졸고 있는 할머니는 그녀의 목숨보다 귀중한 아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하느님을 의지하고 있는 할머니가 참 부러웠다.
호스피스운동의 창시자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정신과 의사)는 78세에 손자 손녀가 침대 주위에서 뛰어 노는 가운데 삶의 마지막을 완성했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든지 삶을 덮칠 수 있고, 슬픔은 언제든지 범람할 수 있다. 인생의 쓰나미처럼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웰다잉'(Welldying)을 할 수 없는 것일까?
탤런트 이광기씨가 지난해 말 신종플루로 7세 된 아들 석규를 떠나보냈을 때, 많은 이가 가슴 아파했다. 그는 석규가 남긴 크레파스 그림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지난 1월 대규모 지진이 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고아원에 가서 티셔츠도 나누어 주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슬픔을 겪고 나니 더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아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