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이 송나라 도성을 포위할 때의 고사다. 7일간의 군량만 준비하고는 "식량이 다 떨어지도록 함락시키지 못하면 돌아가겠다"고 공언했다. 군사 책임자인 자반(子反)을 시켜 상황을 엿보게 했는데 송나라도 화원(華元)에게 초군 진영을 살피게 했다.
서로 염탐하다 화원과 마주친 자반이 사정이 어떠냐고 묻자 "양식이 떨어져 자식까지 팔아먹는 상황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적에게는 속이는 게 상례인데 어찌 실정을 숨기지 않소"라고 물으니 화원은 "군자는 남의 궁핍을 불쌍하게 여기고, 소인배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소. 그대가 군자처럼 보이기에 사실대로 말한 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자반은 화원에게 "우리도 이레분의 양식밖에 없으니 잘 지키시오"라고 귀띔했다.
자반의 보고를 받은 장왕이 반드시 함락시키겠다고 말하자 자반이 반대하며 "이미 우리 식량 사정을 알려주었다"고 털어놓았다. 장왕이 화를 내자 자반은 "작은 송나라에도 남을 속이지 않는 신하가 있는데 초나라에 그런 신하가 없겠느냐"며 "그래서 사실대로 일러줬다"고 해명했다. 이에 장왕도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는 얘기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놓고 한·중 양국 사이에 미묘한 파문이 일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 위원장의 방문을 수용하고 사전 통보도 없었다며 정부가 불만을 표하자 중국은 '내정 문제'라며 맞받았다. 청와대가 천안함 해법을 놓고 중국의 역할에 주목한 나머지 과도한 기대를 갖다 빚어진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천안함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사전에 알려주겠다고 밝힌 것은 또 어떤가.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알린다고 중국이 "우리는 이렇소"라고 털어놓을까. 중국을 좀 더 깊게 봤더라면 뻔한 수사에 흡족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천안함 책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대북 지렛대 역할이라는 해법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 의도대로 북한에 박하게 대하는 것은 우리 희망사항이다. 판을 잘못 읽었든 중국에 뒤통수를 맞았든 간에 화원만큼 상대 보는 눈도 없는 우리의 근시안이 빚어낸 결과이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허울에 젖어 상대를 잘못 본 탓이다. 천안함 사건이 '성심은 아무에게나 통하는 게 아니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던졌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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