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뒤집어 생각하기

나는 가끔 공원의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다. 직립보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 구조적 특징에 항거하는 행위는 아니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처져 내리는 피부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발, 정강이, 배, 가슴, 머리 순으로 줄기를 튼 내 몸을 머리, 가슴, 배, 정강이, 발 순으로 뒤집어보고 싶어서다. 언제나 발이 지면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뿌리 역할을 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매달리는 순간 머리가 지표면과 가까워졌다. 동시에 발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순간, 혈액이 머리로 쏠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공기를 팽팽하게 채운 붉은 풍선이 되고, 안구는 튀어나올 듯하다.

한때 나는 무엇 때문에 나무를 나무라고, 하늘을 하늘이라고, 팔을 팔이라고 지칭했을까에 골몰한 적이 있다. 후에 그것이 사회적 약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한참 동안 발을 머리라고, 손을 입이라고, 턱을 발가락이라고 하면 어떨까에 대한 상상은 계속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이에 숫자가 더해지면서 나는 나 자신의 사고가 무표정해져 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미 정해진 것, 익숙해진 것, 길들여진 것들에 포위되어 낯선 것, 이질적인 것, 코드가 맞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예전 같은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고정관념이 글을 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다.

늘 이슈를 몰고 다니는 방송작가 김수현이 '생은 아름다워'라는 주말 연속극에 게이를 등장시켰다. 잘생긴 두 남자가 애틋한 시선을 교환한다.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한다. 평범한 가정의 두 남자, 게이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시선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왜 꼭 남자와 여자끼리만 사랑해야 되는가?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껏 다수가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어떤 분이 그랬다. 그들이 이상한 건 소수이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상 세상은 소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게이뿐만이 아니라 학벌, 지역, 장애우 등 편견의 종류도 다양하다. 다수의 삶과 닮지 않은 소수를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볼 게 아니라 다름을 차이로 인정해 주면 어떨까.

혈액의 쏠림 현상에 익숙해지자 터질 것 같던 얼굴이 시원해졌다. 눈도 맑아진 기분이다. 나는 그 상태로 오가는 발을 구경한다. 하얀색 운동화가 지나가고, 검은색 단화도 지나간다. 어린아이 발도, 노인의 발도, 슬리퍼도 지나간다. 지금은 얼굴이 아닌 발과 만나는 시간이다.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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