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으로 여성 산악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역의 여성 산악인들은 스포츠클라이밍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개인적 사정으로 외국 고산등반의 맥은 끊어졌지만 클라이밍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 또한 등산이 건강과 몸매 관리, 여가 활용에 최적의 분야라는 시각이 생기면서 주부들을 중심으로 여성 등산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여성 고산등반은 맥 끊겨
나현숙(28·여·엔유씨전자 근무)씨는 최근 TV로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부러워했다. 같은 산악인으로서 항상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국 원정 경험이 있다. 2006년에 45일 동안 인도 시블링(6,543m)을 다녀왔고 2008년에는 6개월에 걸쳐 알프스 14좌(4,000m 이상)를 완등하기도 했다.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소속인 나씨는 "외국 원정을 준비하다 보면 사전 훈련 과정이 무척 힘들지만 끝나고 난 뒤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외국 고산등반은 일정이 긴 데다 경비 부담도 상당하기 때문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인도 시블링 원정은 직장에서의 배려로 가능했고, 알프스 원정은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 경비의 상당 부분은 산악회나 지인들을 통해 충당했다.
과거에는 대구에서도 외국 고산등반을 하는 여성 산악인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 전문 산악인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다. 더욱이 대구에서는 산악회를 중심으로 수년째 외국 원정을 못 가고 있다.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이태순 이사는 "불경기가 길어지면서 모두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역의 외국 원정은 거의 중단된 상태"라며 "여성들은 열심히 활동하다가도 결혼하면 산악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고산등반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등에서는 등산업체들이 많고 한국여성산악회라는 전문 산악회가 있어 여성들의 외국 고산등반이 활발하지만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밍 분야서 맹활약
클라이밍 분야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구 여성 산악인들의 클라이밍 실력은 전국 최고 수준. 각종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대회마다 8강에 대구 선수 2, 3명은 꾸준히 포함된다고 한다.
김영희(39·여·성서클라이밍센터장)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는 여러 대회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은 베테랑 여성산악인이다. 스무살 때 회사 내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등산에 입문한 그녀는 한 청소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암벽 타는 모습에 매료돼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매주 팔공산 바위골이나 연경도약대 등을 찾아가 암벽 타기를 했다.
김씨는 "1990년대 초반에는 클라이밍이 별로 활성화되지 않아 전국 곳곳으로 원정도 자주 갔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시 여성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64박65일 백두대간 종주를 한 '철녀'이기도 하다.
김씨는 결혼하면서 6년 정도 클라이밍을 접기도 했지만 자신의 유일한 취미를 버릴 수는 없었다. 1999년 클라이밍 대회에 참가하면서 복귀했다. 주위에서 "아이나 키우지"라며 빈정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2001년에는 사비를 털어 50일 정도 프랑스 암장 투어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클라이밍은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활용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중간 중간 부딪히는 난관을 극복하고 올라갔을 때의 쾌감은 어느 스포츠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클라이밍을 즐기는 여성 동호인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김씨는 "예전에는 회원들 가운데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지금은 남성 대 여성 비율이 6대4 정도 된다"고 말했다. 파워클라이밍센터 이정옥 센터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 회원 숫자가 늘었다. 특히 40, 50대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했다.
클라이밍 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도 활성화에 한몫 하고 있다. 월드컵경기장과 팔공산 등에 인공암벽장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저변이 그만큼 확대된 것이다. 현재 대구에 클라이밍을 즐기는 여성동호인 수는 400, 5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수다.
◆주부들 속속 산악회로
김연희(43·여·대구 수성동1가)씨는 1년 전 남편과 함께 산악회에 가입했다. 중·고생 아들이 있어 뒷바라지에 손이 많이 가지만 주말만큼은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 그녀는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또 다른 회원들과 어울려 산을 타는 것을 즐긴다. 초반에는 체력이 약해 많이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뒤처짐 없이 산행을 하고 있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삶이 지루해졌는데 남편의 제의로 주말마다 산을 타고부터 다시 활력을 찾았다"며 "건강뿐 아니라 부부애도 새삼 느낄 수 있어 산행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 '백두대간 종주'라는 즐거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여성들의 산악회 활동이 활발하다.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산행이 여성들의 보편적인 여가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최근에는 40, 50대 주부층에서 등산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일부 산악회는 여성회원 수가 남성회원 수를 넘기도 한다. 대구 웰빙산악회는 2천200명의 회원 가운데 여성이 1천200명 정도 된다. 2005년 부부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회원 자녀까지 산행에 참여하고 있다. 웰빙산악회 문성희 회장은 "지난해 100명의 여성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올해도 지금까지 50명가량 되는 등 꾸준히 느는 추세"라며 "자녀를 많이 낳지 않고 자기계발과 여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주부들이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라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