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녹차만들기

찻잎 정성스레 따고 柔捻하고 건조해 보니 '茶道'라는말 이해 되네요

팔공산 차밭에서 기자가 찻잎을 따고 있다. 팔공산은 기후로 봐서 차 재배가 어려울 것 같지만 벌써 7년째 1만㎡ 가까운 차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팔공산 차밭에서 기자가 찻잎을 따고 있다. 팔공산은 기후로 봐서 차 재배가 어려울 것 같지만 벌써 7년째 1만㎡ 가까운 차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녹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나무의 새순을 따 250~280℃의 열로 덖고 비비고 식히기를 적어도 3번 반복한 뒤 잘 말려야 한다.
녹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나무의 새순을 따 250~280℃의 열로 덖고 비비고 식히기를 적어도 3번 반복한 뒤 잘 말려야 한다.

특집팀 기획회의에서 이번 기자체험을 어떤 분야로 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종이컵에 담긴 녹차 티백에 눈길이 갔다. "차 만들기 체험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설픈 상식에도 곡우(4월 20일) 전후에 찻잎을 따 우전과 세작을 만드니 늦은 게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올해는 늦봄 추위가 맹위를 떨쳐 식물들의 생장이 늦었을 것이므로 지금도 괜찮지 않겠냐는 쪽으로 모아졌다.

"그럼 체험 장소는?" 전남 보성이나 지리산을 떠올리는데 "멀리 갈 것 있나요. 팔공산에도 차밭이 있는데"란 후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도대체 팔공산에 언제부터 차밭이 있었나. 금시초문인데." 즉각 섭외에 들어갔더니 "팔공산에도 1만㎡(3천평) 정도의 차밭이 있으니 지금 와서 체험하면 될 것"이란 희소식이 돌아왔다.

◆팔공산 차밭 7년 전부터 조성

여우비가 오락가락하던 11일 오후 팔공산 방짜유기박물관 못미처 살고 있는 팔공산녹차연구회 김종욱(70) 회장의 집을 찾아갔다. 널찍한 마당 양쪽으로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눈 밝은 사진부 김태형 기자가 "여기 차나무 있네. 저기 비닐하우스에도 있고"라며 탄성을 질렀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김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체험 전에 팔공산 차 이야기부터 나누자고 안으로 이끌었다.

"팔공산에 언제부터 차밭이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김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막을 듣지 않아도 그동안 마음고생, 몸고생이 어느 정도였는지 표정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곳 주민들 가운데 팔공산을 정말 사랑하는 분들이 많아요. 7년 전 어느 날 겨울 되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는 팔공산 순환도로변 포도밭이 보성 차밭 같으면 팔공산이 얼마나 멋지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한번 해 보자고 뜻을 모았죠."

하지만 추진은 쉽지 않았다.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제대로 되는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농민들 입장에선 씨를 뿌리고 몇 달 뒤에 소출이 나야 하는데 차는 적어도 4, 5년을 수입 없이 기다려야 하니 수지타산이 도저히 맞지 않는 일. 씨를 사 주겠다고 해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김 회장을 비롯해 뜻을 낸 3명이 직접 달려들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재배하는 걸 추운 대구에서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밭에 심고 비닐하우스에 심은 차 씨앗들은 의외로 잘 자랐다. 김 회장은 재작년에 처음으로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다. 그때 지리산 스님, 보성 차밭 관계자, 차회 사람 등을 불러 시음했는데 평가가 아주 좋았다. 보성 차 못지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차회 사람들과 인연이 돼 그 사람들이 팔공산에서 모임을 갖고 직접 차를 만들기도 하면서 언론도 탔습니다. 그래도 농민들은 하려 들지 않아요. 대구는 인구 대비 차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인데 팔공산에 차 재배가 조금만 활성화되면 대구 사람들이 굳이 보성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보성 가려면 교통편 때문에 애를 먹는 다른 지역 사람들도 팔공산으로 올 겁니다. 관광산업으로도 매력이 있는데 워낙 추진이 더디니 답답하죠."

◆정성을 들여야 맛이 난다

팔공산의 차밭은 한곳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군데군데 조그맣게 조성돼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김 회장의 안내로 방짜유기박물관 건너편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1천 남짓한 3층 차밭이 보였다. 규모는 보성이나 지리산, 제주도 등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기념사진 찍을 정도는 된다"는 김 회장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차밭은 골이 넓다. 사람이 오가며 잎을 따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잎을 따야 할지 고민하는데 김 회장이 '일창이기'를 따라고 일러줬다. 처음 싹터 나온 잎을 창(槍)이라 하고 아래로 붙은 잎을 기(旗)라고 하니 1창, 1창1기, 1창2기, 1창3·4기 등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나무 키가 50㎝ 안팎이라 맨 위의 잎을 따는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되지 않았다. 조그마한 소쿠리 하나를 받았는데 막상 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의 작은 잎으로 채우려 드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따야 50g 정도의 차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야 한 소쿠리를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냉해를 입어 죽은 나무가 보였다. 안타까운 생각에 김 회장을 돌아보니 "팔공산 날씨가 걱정스럽겠지만 올해처럼 때늦은 추위가 아니면 방풍막만 해 줘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며 "식물이든 과일이든 일교차가 커야 향이 좋다"고 했다.

따온 찻잎은 고온에서 효소를 파괴해 발효를 억제하는 살청(殺靑)과 부피를 줄이고 외형을 만드는 유념(柔捻), 건조 과정을 엄격히 거쳐야 제맛을 낸다.

250~280℃에서 계속하는 작업이라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전기솥의 스위치를 올리자 금세 뜨거워졌다. 한쪽 방향으로 모으고 흩트리기를 몇 분간 계속해야 한다. 모아서 손에 쥐고 흩트리니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잎의 풋내가 풍겼다. 손가락을 데면서 계속했더니 제법 구수한 향이 났다.

뜨거운 찻잎을 재빨리 꺼내 비비며 식히는 유념 작업도 정성이 필요했다. 적당한 힘으로 비비고 풀어줘야 온전한 형태로 말아진다. 자칫하면 애써 따고 덖은 잎이 찢어지거나 부서지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유념은 자신의 체취와 기를 불어넣는 과정이므로 마음까지 깨끗해야 차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계속 돌려가며 비비자 손끝에 끈끈한 진액이 묻어났다.

유념한 잎은 다시 솥에 넣어 덖었다가 꺼내 비비는 과정을 적어도 3차례 되풀이해야 한다. 한 소쿠리를 채웠던 잎은 열을 가하고 식히고 비비기를 계속할수록 부피와 무게가 줄어 한손에 들어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마무리 건조까지 하면 30g 정도 되겠다는 말에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를 기르고 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하고 보니 한 봉지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 한다는 녹차 가격이 크게 비싸지는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구를 다도(茶道)의 고장으로

내손으로 만든 차를 맛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작년에 김 회장이 만든 차를 함께 음미했다. 차를 만드는 데 정성을 들이는 만큼 다도를 하는 사람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격식에 맞춰 차를 마시는 일도 이해가 됐다. 중국 사람들은 차를 예술로 여겨 다예(茶藝)라 하고, 일본 사람들은 예의를 중시해 다례(茶禮)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를 닦는 일로 여겨 다도(茶道)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수긍이 갔다.

우리나라에 차가 전해진 것은 기록상으로 신라 흥덕왕 3년(823년)이지만 선덕여왕이 차를 가꾸고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 회장은 "팔공산 부인사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는데 굳이 보성이나 다른 지역의 차를 구해와 다례를 지낼 이유가 있느냐"며 "팔공산에서 차 재배를 활성화해 팔공산 차로 지내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계에 평생을 몸담았지만 산과 함께 보낸 인생이라고 해도 괜찮을 거라는 김 회장의 팔공산 사랑은 끝이 없었다. "몇 년 전에 발표한 걸 보니 보성군이 일년 동안 차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3천700억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더 많겠지요. 알아보니 군에서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관광객 유치에도 발벗고 나선다고 합니다. 전국 어디든 관광객이 20, 30명만 되면 군에서 버스를 보내줄 정도라니 대구시도 이제 관심을 더 가져야 합니다."

그동안 물을 끓이고 적당히 식기를 기다려 찻물을 붓고 다기를 미리 데워 한잔씩 따라 마시는 절차는 '빨리 많이' 먹는 데 익숙한 기자를 조갈증 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차에 대한 지식을 서푼이나마 배우고, 어설프게라도 차 만드는 과정을 몸으로 겪고 나니 한잔 한잔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혀에 닿는 맛과 입안에 감도는 향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담긴 도(道)를 팔공산에서 더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