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텃밭예찬

박월수
박월수

가까운 한실들에 주말농장을 얻어 푸성귀를 가꾸어 온 지 어느덧 네 해째다. 말이 주말농장이지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해서 텃밭이라 부른 지도 한참 됐다. 올봄 날씨는 유난해서 가장 먼저 씨를 뿌린 상추며 쑥갓이 이제야 먹을 만큼 자랐다. 솎아서 이웃에 조금 나눠 주고 우리도 모처럼 삼겹살을 곁들인 상추쌈으로 포식했다. 아이들이 일찍 돌아온 주말, 가족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직접 농사지은 음식을 함께 먹었더니 다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표정들이다.

텃밭을 가꾸기 전 우리 부부는 먼저 아이들의 참여 의사를 물었다. 두 아이 모두 최고의 기쁨을 표시했고 그때부터 우리 가족 사이엔 더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우선 어떤 종류의 씨앗을 뿌릴지 의논했고 파종한 채소가 잘 자라는지 수시로 둘러보았다.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농수로의 물을 뒤뚱거리며 떠다 날랐다. 풀을 뽑다가 목이 마르면 너나없이 흙 묻은 손을 뻗어 오이를 따 먹었고 다 자란 감자를 캐던 날은 모두들 밭에 나가 함께 거두어 들였다. 생각만큼 수확이 나질 않아 호미자루만 물끄러미 내려다본 적도 있고 정성을 기울인 만큼의 풍성한 열매 덕분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텃밭에서 우리가 얻은 건 참으로 많다. 신선한 채소로 차린 식탁은 가족의 식욕을 돋웠다. 가끔 허락 없이 다녀간 고라니들이 우리의 입맛을 훔쳐가긴 했지만 거기엔 적선의 기쁨이 있었다. 텃밭에 이웃한 식구들과 새참 삼아 막걸리를 마실 때면 근처 솔숲에선 낮술 향기에 취했는지 뻐꾸기가 울곤 했다. 철마다 언덕을 가득 메운 들꽃은 제 이름처럼 순하게 피었다 지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키 큰 미루나무는 까르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 너머로 바라보는 일몰은 기억 속의 서랍에 오래 간직하고픈 풍경이다.

이렇듯 텃밭으로 인해 가족의 밥상머리 대화가 늘었음은 물론이고 입맛과 귀맛과 눈맛마저 찾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당연하다.

숨어있는 일상을 보지 못한다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행복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데서 온다는 말이다.

요즘의 우리가 절망을 느끼는 이유는 일상에서의 행복을 망각하고 그 가치를 무시하고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행복을 누리기가 아까워 자꾸만 저축해 놓으려고 한다. 지금 이 악물고 노력하면 나중에 좀 더 잘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 중요한 건 현실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일이다. 지금 행복이 옆집 울타리를 넘어오는 게 보이시는가!

박월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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