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 보기] 조각가의 새 만들기 '놀이'

쪾정은기 '하늘 놀이'전 / 봉산문화회관 / ~6.13

정은기 작
정은기 작 '솟대'

주로 젊은 작가들의 발표 무대로 알려진 대구 봉산문화회관의 '유리 상자' 전시실에서 원로 조각가인 정은기의 신작 실험이 펼쳐져 눈길을 끈다. 더욱이 기존에 해오던 작업과 아주 동떨어진 모습이 의아할 정도다. 평소 그는 화강암 석재의 견고한 물성을 강조하며 구축적인 포갬의 단순한 미학을 추구했다. 혹은 달이나 알의 모티프를 통해 생명의 기원이나 잉태 혹은 탄생을 상징하는 주제를 추상적으로 표현해왔었다. 작은 나뭇가지를 단순하게 결합해 만든 이번 작품들은 새로운 표현 재료와 방법을 통해 변신을 시도하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년퇴직 후 4년 가까이 해온 현재의 작업은 '솟대'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공중에 높이 세우던 오래된 민간신앙의 상징물을 닮아서 또 누구나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하늘 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힘든 기술과 난해한 이론을 적용하려던 종래의 태도와 달리 이렇게 손쉽게 만든 것이 예술이 되는지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에서 예술가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과 다시 어린애처럼 천진해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장난감 같은 사물이 어떻게 예술작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기능을 하는 지에 대해 존 버거는 그의 미학적 에세이 '흰 새'(The white bird)에서 흥미롭게 기술한 바 있다. 민간에 널리 퍼져있는 전통의 나무 조각 공예품에 대해 쓴 그 글에서 인상적인 것은 단순하지만 새의 모양을 재현하는 '기술'과 그것의 상징성이 발휘하는 '효과' 때문이었다.

'호작질'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이 놀이에도 그것을 새로 인식시키며 동시에 '솟대'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다. 뾰족한 부리와 목, 둥근 몸통과 꼬리 부분뿐이지만 그래도 그 조각이 행운이나 사랑을 나타내며 기원이나 염원을 전하는 동물의 표상으로 여기게 된다. 또 제작에는 작가의 축적된 기술과 지혜와 재료에 대한 나름의 존중이 들어가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통일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형식이 있고 수없는 반복에 의해 풍부한 다양성마저 확보된다.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는 작품을 매달거나 세우거나 할 때 이들을 무리로, 혹은 단독으로도 서로 어울리게 놓을 수 있어서 전시나 설치 장소에 따라, 또 공간에 맞게 다양한 변화를 연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각각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형태들이 관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이야기의 상상으로 이끌어 들이게 된다면 그때 이 '놀이'가 예술로서의 기능과 효과를 다하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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