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스로 지키는 性 주체성, 언제 어디서든 "이러시면 안되죠~"

아마추어 달구벌여성극단 성희롱 방지극 '이러시면 안되죠'

달구벌여성극단 단원들이 성희롱 방지극
달구벌여성극단 단원들이 성희롱 방지극 '이러시면 안되죠!'를 공연하고 있다.

"연두씨, 이 아가씨 가슴 죽이지? 연두씨도 그런대로 괜찮네."

"부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젊은 학생들도 서로 좋으면 동거도 하고 그런다던데, 연두씨도 해봤어?"

"저를 어떻게 보고. 부장님, 너무하세요!"

15일 오후 5시, 대구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동부여성문화회관 달구벌여성극단의 '이러시면 안되죠!'가 공연됐다. '이러시면 안되죠'는 성희롱 방지에 대한 연극. 날것으로 오가는 아줌마들의 사투리 대사가 인상적이다. 200여명의 관객들은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때로는 심각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공연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됐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와 낙태 이야기. 인턴 사원인 한 여성과 인턴 정규직 전환의 권한이 있는 남성 부장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직장 내 성희롱 에피소드는 직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농담도 성희롱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또 권력을 가진 남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간의 관계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낙태 이야기는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두 여성 이야기.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불임 여성과 '감기 걸려서 감기약 먹는 것과 아이가 생겨 낙태를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항변하는 여고생 사이에서 생명 문제를 다룬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날 연극을 공연한 '달구벌 여성극단'은 1995년 창단된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로, 지역 유일의 여성 극단이다. 아마추어 공연이지만 꽤 수준급이다. 연극에 관심있는 여성들이 모여 연극을 하는데 일주일에 두 차례 모여 연극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수다떨며 내공을 쌓아왔다. 이들의 수다는 연극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대본의 대사가 되기도 한다. 극단 회원 16명 가운데 이번 정기공연에는 4명이 참가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한 단원들은 무대 뒤 스태프로 참가했다. 이날 연극의 나머지 배우들은 극단 처용 배우들이 함께 했다.

여성극단 회장을 맡고 있는 장숙영(46'대구 수성구 지산동)씨는 달구벌여성극단에서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젊은 시절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여기서 이루게 됐죠. 여성들끼리 주제를 잡고 대본 작업에도 참가하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아들, 딸과도 자연스레 대화가 오가고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아줌마'들은 연극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이해한다. 극단 회원들은 다양한 역할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중년의 여성들에게 찾아오는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다.

이날 청소부 역할로 무대에 오른 김현정(40'대구 달서구 비산동)씨는 "3년 전 회사 동료를 따라 구경하러 왔다가 극단에 가입했는데 자신감도 생기고 가족들에게 떳떳해져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여러 단체와 학교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생생하지 못하다. 달구벌여성극단은 이 연극을 앞으로 성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달구벌여성극단은 성석배 극단 처용 대표가 이끌고 있다. 수년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제 가족같은 사이가 됐다. 성 대표는 "연극을 통해 아줌마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가족들에게 존경받을 때 가장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연극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는 것. "극단 생활을 하다가 20대의 열정을 회복하고 일을 찾아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 문화에 중장기적으로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대본 작업을 함께 해서 더욱 의미가 크죠."

매년 5월엔 정기 공연을 갖고 그 외에도 노인계층이나 저소득층 등 문화 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연극으로 자원봉사도 한다.

성희롱 방지극답게 배우들은 연극 도중 관객들로 하여금 '이러시면 안되죠!'를 크게 외치도록 유도했다. 관객들은 '이러시면 안되죠'라고 외치며 부당한 상황에 대해 저항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여성극단 소속 배우 문윤진(43'경산 옥곡동)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연극을 시작한 이후 사물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사람의 존재가 성스러워졌다고나 할까요. 가족이 저를 대하는 느낌도 좋아졌어요. 연극을 알기 전과 후의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니, 저 자신도 놀랄 정도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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