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단시간에 산업화를 이뤘고 개발도상국의 발전모델이 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상북도는 글로벌 새마을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출범 40년을 맞은 새마을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북이 글로벌 새마을운동의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한 발전방안을 10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시리즈 목차
(1)새마을운동 40년
(2)새마을운동 발상지 경상북도
(3)왜 다시 새마을운동인가
(4)새마을운동 4대 핵심사업
(5)앞서가는 경북 새마을운동
(6)세계로 가는 새마을운동
(7)새마을운동의 세계화-베트남
(8)새마을운동의 세계화-인도네시아
(9)새마을운동의 세계화-중국
(10)새마을운동의 중심 경상북도
40년 전인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농민'관계기관'지도자 간의 협조를 전제로 한 농촌 자주노력의 진작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새마을가꾸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시대별 새마을운동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가꾸기사업 제창 이후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바탕으로 한국 근대사회의 성장을 이끌었다.
1970년 10월부터 1971년 6월까지 내무부를 통해 전국 3만3천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가 공급돼 마을 앞길 넓히기와 공동퇴비장 만들기, 공동빨래터 만들기, 공동우물 만들기, 하수구 보수 등의 사업이 펼쳐졌다. 1971년에는 사업성과가 우수한 마을 1만6천600곳을 선정해 시멘트 500포와 철근 1t을 추가 지원함으로써 마을 간 선의의 경쟁을 일으켜 새마을운동의 범국민운동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1971년 이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의 성공적인 결과가 현실화되고 농촌사회에서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1974년 이후 새마을운동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1977년 이후부터는 기존 마을단위 중심의 사업에서 마을과 마을 등을 묶는 지역권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져 지역사회의 상호연대감을 높이게 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정신문화개선사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새마을문고사업이 있었다. 새마을문고사업을 통해 경상북도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주민의 교육 및 학습에 관한 관심과 의지를 높일 수 있었다.
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관제운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을 통해 새마을운동은 친절'청결'질서의 사회기풍 조성, 건전 생활 및 건강사회 구현을 위한 폭넓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해 새마을운동에 대한 국민의식을 높이고 새로운 운동방향 설정의 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 새마을운동은 199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살리기 국민저축운동, 경제살리기 1천만명 서명운동, 금모으기 운동 등 '경제살리기 새마을운동'을 추진해 경제 위기 극복 및 경제활성화에 기여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은 세계화'지방화 시대 환경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변화노력을 시도했다. 1998년에는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이 선언됐으며, 저개발국가 및 사회주의국가를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의 국제 보급이 시작됐다.
특히 1990년대 경북 새마을운동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과 동전 모으기, 숨은 자원 모으기, 경제살리기 서명운동 및 저축운동 등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2000년 이후 새마을운동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저개발국가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역사회개발운동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받았다. 새마을중앙회가 2000년 UN의 NGO로 가입했으며, 2003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콩고, 스리랑카, 몽골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개발국가와 러시아'중국'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새마을운동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국제새마을운동을 통해 '새마을' 브랜드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은 2000년 통일 손수레 보내기 국민운동과 2001년 대북지원사업자 승인, 2002년 산란종계장 협력사업, 2005년 각종 농기자재 보내기 등의 사업으로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
◆농촌근대화'경제발전 원동력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과 정부의 지원, 새마을지도자의 헌신적 봉사, 국민의 자조의식과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 정신교육 강화 등으로 우리나라 농촌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새마을운동은 낙후된 농가의 소득증대로 도농 간 소득격차 해소를 앞당겼다. 도시가구소득은 연평균 20.5% 증가한 반면 농가소득은 29.2% 증가해 도시가구소득보다 농가소득의 증가율이 훨씬 높았다. 도시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1970년 67%였지만 1977년에는 102%로 도시가구소득을 초월했다.
새마을운동은 농가의 소득 증대로 농촌의 빈곤탈피 및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농가소득은 1970년 25만5천800원이었지만 1979년 222만7천500원으로 연평균 27.2% 증가했다.
또 농촌도로가 개설돼 농업 및 생활 인프라가 개선됐다. 1970년대 농촌도로는 새마을가꾸기사업 4만4천227㎞, 농로개설사업 1만4천883㎞, 기타 사업 2천687㎞ 등 총연장 6만1천797㎞에 달했다.
농업생산기반시설과 생활기반시설이 조성돼 농가 소득증진과 주민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됐다. 농로 개설, 교량 가설, 보 등 농업생산기반시설이 확충됐고 주택 개량, 취락구조 개선, 간이급수, 하수구시설이 개선돼 주거환경이 나아졌다. 농어촌전화와 마을통신 자석식전화시설 설치로 지역의 정보화수준이 향상됐다. 또 마을회관, 소도읍 가꾸기 등의 사업으로 쾌적한 마을 만들기와 주민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반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새마을운동은 정신혁명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지역주민에게 '하면 된다' '잘살아야 한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줬다. 국민들의 의식을 개혁하고 전근대적'비합리적 체념과 나태를 탈피하며 지역의 과제를 이웃과 더불어 해결하고 개선하려는 의욕과 실천을 심어줘 국민들은 발전과 개발을 위한 동기를 갖고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경북도 편창범 새마을봉사과장은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 농촌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출범 40주년을 맞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새마을운동의 발전 경험을 퍼뜨려 경북의 새마을운동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협찬:경운대 새마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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