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대구파티마병원 외과 조해창 과장

인공막 이용한 탈장 수술 도입, 국내 첫 1천례 돌파

탈장은 복근의 약한 부분이나 결손부를 통해 주로 사타구니쪽으로 지방조직이나 장 등 복강 내 장기들이 밀려나오는 증상이다. 눕거나 손으로 밀어넣으면 쉽게 들어가기도 하지만 반드시 진찰을 받아야 하고, 튀어나온 부위가 고정된 경우 신속히 처치해야 한다. 특히 탈장 부위가 꼬이는 '교액성 탈장'은 피가 통하지 않아 밀려나온 장이 썩을 수 있어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한다.

탈장은 저절로 낫지도 않고, 오래 두면 통증도 심해지고 그만큼 복원이 어렵다. 수술 외에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기존 수술법은 수술 후 통증이 있거나 재발하는 부작용이 있다.

대구파티마병원 외과 조해창(43) 과장은 '바이레이어'(Bi-Layer)라는 3차원 인공막을 이용한 새로운 탈장 수술법을 도입해 지난해 1월 국내 최초로 1천례 수술을 돌파했고, 지금 1천300례 이상의 수술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2006년 이후 홍콩, 싱가포르, 태국, 중국 등지에서 의사 60여명이 찾아와 첨단 수술기법을 배워갈 정도다.

◆선친 따라 외과의사의 길로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스스로 '외과의사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조 과장의 선친은 고(故) 조수호 원장. 지역에서 정형외과 분야 선구자로 손꼽히던 조수호 정형외과 원장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의사가 됐습니다. 막상 의대에 진학하고 나니 대학 1학년 때 간암으로 작고하셨죠. 벌써 20년 전입니다. 간암 진단 받고는 6개월 만에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그는 의사 중에도 외과의사가 된 것이 어쩌면 당연스러울 정도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닮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증을 딴 뒤에 그는 뜬금없이 공군 단기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됐다. "군의관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대구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 때문에 멀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활주로에서 껌 떼는 일을 한 거죠. 무척 힘든 시기였습니다. 전혀 의도치 않게 운동권 학생으로 찍히는 바람에 18개월 군 복무를 하면서 보직이 8차례나 바뀌었습니다. 식당, 목욕탕, 세탁소 등 안해 본 일이 없습니다."

대구파티마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것도 유난히 파티마병원을 좋아했던 선친의 영향이 컸다. 영남대병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부터 파티마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운 좋게'라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필연같은 일이다.

"병원 과장으로 와도 서로 하고 싶은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신참 과장이다보니 관심없고 하기 싫은 분야를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게 탈장이었습니다.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이레이어 탈장 수술 도입

우연찮은 기회로 당시만 해도 첨단 수술법이던 '바이레이어' 탈장수술을 접한 그는 2003년 미국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수술법을 고안한 길버트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논문과 비디오를 보면서 나름대로 수술을 했는데, 과연 제가 하는 게 맞는지 개발자를 찾아가서 확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제가 하고 있던 방식과 한치의 차이도 없더군요."

자신감을 얻는 그는 2004년 국내 탈장 심포지엄에 참석했고, 거기서 수많은 의사들이 보는 가운데 실시간으로 탈장 수술 시범을 보였다. "당시 미국탈장학회 회장이던 머피 박사도 참석했는데, 일종의 심사위원인 셈이었죠. 제 수술이 끝난 뒤 머피 박사가 '한국에서 바이레이어 수술만큼은 조 박사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를 계기로 대한탈장학회가 발족했고, 현재 조 과장은 감사를 맡고 있다. 대학병원도 아닌 지역 2차 병원의 과장이 전국학회에서 이처럼 주요 직책을 맡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바이레이어 수술은 PHS라는 인공막 제품을 탈장 부위에 집어넣는 것.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수술이다.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 인공막을 집어넣는 것이 관건. 초보자는 제 위치를 찾는데 1시간 이상 걸리는 등 숙련도가 필요한 수술이다.

조 과장은 이르면 15분 만에 수술을 끝낸다. 국내외 의사들이 그를 찾아와 배우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번은 태국 의사가 배우고 돌아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태국탈장학회 회장이더군요. 이후 그 회장의 초청으로 태국에서 저만을 위한 탈장 심포지엄이 따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오전 3시간 만에 환자 10명의 수술을 깨끗하게 끝냈더니 혀를 내두르더군요."

◆제자리 지키며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

오는 10월에는 아시아태평양탈장학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국내 최초로 바이레이어 수술 1천례를 돌파한 조 과장은 '국가대표' 자격으로 학회에서 실시간 수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바이레이어 수술은 기존 수술법과 달리 재발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워서 의사들도 배우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작용이 우려되는데도 기존 수술법을 여전히 많이 쓰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수술이 됐지만 처음 그가 새 수술법을 도입했을 때 비난도 많이 받았다. 사기 수술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저런 수술로 어떻게 저렇게 클 수 있을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었다.

"탈장은 지난해 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다빈도 47위에 오를 만큼 적잖은 질병입니다. 수술만 3만2천여명이 받았고, 잠재 환자까지 포함하면 5만명에 이를 겁니다. 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수술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10월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국제탈장학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아직도 탈장에 대해 일반인뿐 아니라 의사들에게 알리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조만간 중국에 가서 새로운 탈장 수술에 대한 강연도 할 생각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도 바이레이어 수술은 기존 수술에 비해 훨씬 적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는 제자리에서 항상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의사는 환자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개원할 생각이 없냐고 주위에서 부추기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개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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