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뒤 독일 대양함대의 잔여 전투함 74척은 영국의 군항 스캐퍼 플로에 억류당한다. 연합국은 당시 최첨단 기술력의 집합체였던 이 군함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자국 함대에 편입시켜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속셈이었다. 베르사유조약 협상과정에서 연합국의 이런 의도가 드러나자 함대 지휘관 루트비히 폰 로이터 제독은 조약 체결 일주일 전인 1919년 오늘 비장한 결정을 내린다. 영국 함대가 훈련을 위해 출항한 틈을 타 마지막을 뜻하는 'Z상황' 곧 자침(自沈)을 하달한 것이다. 독일 제국해군을 통째로 적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독일 수병들이 눈물을 흘리며 군가를 부르는 가운데 전함 10척, 순양전함 5척, 어뢰정 32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를 모두 합한 배수량은 40만톤이나 된다.
로이터 제독은 1869년 소도시 구벤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다. 1차대전 중 도거뱅크 해전,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과 싸웠고 1917년 제독에 올랐다. 자침 명령으로 영국은 그를 전범이라고 비난했으나 독일인에게는 제국해군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이었다. 독일은 훗날 세계 2차대전에서 스캐퍼 플로에 대한 잠수함 공격으로 치욕을 되갚았다. 이 작전으로 영국전함 로열오크호가 격침되고 883명이 전사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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