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대생 피살' 부실수사 닮은꼴 또 있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12년 전 딸 잃은 아버지 경찰 허술대처 분노

1998년 의문의 죽음으로 고인이 된 딸을 가슴에 묻은 정현조(64) 씨. 숨진 딸의 사진을 보던 그는
1998년 의문의 죽음으로 고인이 된 딸을 가슴에 묻은 정현조(64) 씨. 숨진 딸의 사진을 보던 그는 "경찰의 수사를 보니 그때와 비슷해 기가 막힌다"며 분개했다.

24일 실종 이틀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여대생 L 씨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12년 전 숨진 '여대생 정은희'(당시 19세) 양의 사인(死因)에 얽힌 미스터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 양의 유족들이 개설한 인터넷 추모 홈페이지에는 정 양의 사인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이 불붙고 있고, 유족들은 당시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사건의 부실 수사와 꼭 닮았다며 분개했다.

정 양의 아버지 정현조(64) 씨는 28일 "우리 딸, 은희 사건도 경찰의 초동 수사가 문제였다"며 "그때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10년 넘게 이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경찰이 사고 당시 초동 대처만 제대로 했어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는 것. 정 씨는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을 보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에 한숨만 나온다"며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12년 전 기억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학교 축제기간 중 술에 취한 동료를 바래다 주러 나갔던 딸은 이날 오전 5시 10분쯤 구마고속도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학교에 간 지 7시간 만이었다.

경찰은 정 양이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을 무단횡단하다가 C(당시 52세) 씨가 몰던 23t 덤프트럭에 치어 숨졌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은 경찰수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발견 당시 속옷없이 겉옷만 입고 있었던 점, 사라진 속옷이 사고 장소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는 점 등 숨진 이유가 교통사고 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다며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정 양의 속옷이 없었던 것은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 뒤 영안실 직원들이 사체를 추스르면서 벗긴 것이며, 유족들이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하는 속옷은 너무 낡아 사고 직전 정양이 입었던 것으로 볼 수 없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 경찰은 결국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지은 것.

유족들은 이후 재수사를 촉구하며 사정 기관에 여러 차례 진정서를 냈다.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 끝에 경찰은 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 후에야 속옷에 대한 감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유족들은 이후 경찰이 직무를 유기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기각됐다.

정 씨는 "8년간 아무리 진정서를 내고 이야기해도 경찰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이젠 할 말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쳤다"며 "(수사를)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안 되는 쪽으로 가더라"며 울분을 삼켰다.

정 씨가 이번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을 보며 가슴이 더 쓰라렸던 것은 12년 전 경찰과 지금의 경찰 수사태도가 꼭 닮았다는 점 때문. 정 씨는 "눈 앞에서 범인을 놓쳐 놓고 남의 집 귀한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목청을 높였다.

유족들이 2006년 개설한 정 양의 추모 홈페이지(http://www.ibuksori.com)에는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이후 160여 명이 이곳을 찾아 경찰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을 남겼다.

정 씨 유족들은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의 유족에게 같은 일을 겪은 사람으로 직접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겪어본 사람만이 그 '찢어지는' 아픔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98년 정 양 사건을 담당했던 달서경찰서 형사들은 대부분 은퇴한데다 교통사고 사망사건으로 종결돼 정 양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조국 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비상계엄 사과를 촉구하며, 전날의 탄핵안 통과를 기념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극우 본당을 떠나...
정부가 내년부터 공공기관 2차 이전 작업을 본격 착수하여 2027년부터 임시청사 등을 활용한 선도기관 이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2차...
대장동 항소포기 결정에 반발한 정유미 검사장이 인사 강등에 대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경남의 한 시의원이 민주화운동단체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