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간암 투병 이상식씨

"귀한 아들 태어난지 넉달도 안돼 암이라니…"

간암으로 투병 중인 이상식(46) 씨의 부인 강미혜(45) 씨는 남편에게
간암으로 투병 중인 이상식(46) 씨의 부인 강미혜(45) 씨는 남편에게 "이제 갓 돌을 넘긴 아들이 초등학교에 갈 때 만이라도 살아달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상식(46·대구 서구 내당동) 씨와 강미혜(45·여) 씨는 지난해 여름,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아들 성민이(1)를 얻었다. 사십대 중반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부부는 아들 재롱을 보는 재미에 삶의 고단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이들 부부에게 불행이 잇따라 찾아왔다. 성민이가 태어난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상식 씨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형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 달에는 사글세 방 계약도 끝나 길거리로 나앉게 될 형편이다. 슬퍼해야 할 이유는 이토록 많은데 웃어야 할 이유는 단 하나, 한 살배기 아들의 재롱뿐이다.

◆물려받지 말았어야 할 유산

상식 씨와 미혜 씨는 7년 전 만났다. 미혜 씨의 언니가 '좋은 남자'라며 그를 소개시켜줬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았던 미혜 씨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던 상식 씨에게 결혼식은 사치였다. 혼인신고가 곧 결혼식이었다.

둘 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맺은 인연이었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했다.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결혼생활 5년 만에 아들도 얻었다. 아버지가 된 상식 씨는 "성민이 공부시키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며 몸이 아픈 것도 잊고 일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암세포는 조금씩 그의 간을 파고들었다. 남편이 간암 선고를 받던 작년 10월, 미혜 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상식 씨의 병은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이다. 어머니는 6년 전 급성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B형간염을 가지고 있어 평생을 조심하고 살았지만 결국 그 병을 이기지는 못한 것이다. 그 역시 B형간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간암 진단을 받고서 알게 된 사실이다. 빠듯한 형편에 몸을 돌볼 여력이 없었기에 병을 갖고 있는 줄조차 모른 채 살았다.

지난달에는 3년간 간암으로 투병했던 형이 세상을 떠났다. 병석에 누워있는 상식 씨는 형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미혜 씨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형의 부고를 받아든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잊고 지냈다"며 "어쩌면 한집안에 이렇게 많은 고통을 주는 건지 간암이 원망스럽고, 또 무섭다"고 했다.

◆병원에서 자라는 성민이

이들 가족에게 병원은 곧 '집'이고, 병실을 함께 쓰는 다른 환자들은 이웃사촌이다. 아이는 병원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목욕을 한다. 목욕시킬 곳이 마땅히 없어 병원 화장실 세면대에서 아이를 씻기는 엄마의 마음은 칼로 베어낸 듯 아려온다.

이달 19일은 아이의 돌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릴 형편도, 축하객을 초대할 형편도 못돼 미혜 씨는 모자만의 조촐한 '돌잡이 상'을 차렸다. 청진기와 돈, 연필을 올려놨는데 성민이는 열 번 모두 '연필'을 잡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상식 씨는 그 모습조차 보질 못했다. 그는 성민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만큼은 제 몸을 잘 챙기고, 아픈 사람도 살리는 명의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성민이의 몸무게는 13kg이 넘는다. 또래에 비해 몸집이 제법 큰 편이다. 아빠는 아들을 안을 힘조차 없다.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돼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온다.

그는 병원에서 잘 자라준 아들에게 고마워하고, 또 미안해한다. 아들을 맘껏 안아줄 수 없는 아버지는 그래서 가슴으로 운다.

◆딱 1년 만 더 살았으면

가뜩이나 가난했던 그의 가정은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치료제를 사용하다 보니 벌써 1천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내야 했던 것이다. 아내는 여태 모아둔 돈을 몽땅 쏟아 붓고도 모자라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몸이라도 성하면 막일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사실 미혜 씨는 몸이 불편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6년 전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왼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는데 병원비가 아까워 참고 있다가 치료시기마저 놓쳐버렸다.

이제는 더 손 벌릴 곳도 없는 처지에 전세방 계약 만기도 다음 달로 다가왔다. 한 달에 20만원짜리 사글세 방을 다시 계약하려면 200만원이 필요하지만 미혜 씨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다. 당장 내야 할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 200만원이란 거액을 마련하는 일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불어나는 병원비와 방값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는 미혜 씨. 그녀는 "아들과 함께 죽을 결심까지 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상식씨는 "딱 일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씩씩하게 자라는 아들의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암은 점점 그의 몸 속에 퍼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래야 아들을 하루라도 더 안아줄 수 있으니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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