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TV는 17일 오후 8시 방송되는 '역사스페셜-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온 귀화인'편을 통해 100만 귀화 외국인이 함께 사는 21세기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 역사 속의 '귀화인'들을 만나본다.
2천 년 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가야국에 도착한다. 한국 최초의 국제결혼. 바로 가야국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만남이었다. 10명의 아들 중 두 명에게 자기의 성을 따르게 했던 허황옥.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될 수 있었을까?
1010년 안남국의 '리왕조'는 200년 동안 번성했던 베트남 최초의 독립 왕조였다. 하지만 진씨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왕의 숙부이자 군 총수였던 이용상은 배를 타고 3천600여 km 떨어진 황해도 옹진반도의 화산에 이른다. 그리고 1226년 이용상은 몽골군에 맞서 공을 세운다. 화산 이씨의 시조다.
일본군 선봉장 사야가, 즉 김충선의 이야기는 대구에서는 더욱 유명하다. 1592년 선조 25년 4월.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전투에 참가한 22살의 '사야가(沙也加)'. 그러나 그는 돌연 조선에 투항해 귀순한다. 사야가는 경주, 울산 등지에서 일본군의 침공을 막아내고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조선군에게 전수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귀화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고려 초, 100년 동안 무려 20만 명 가까이 귀화했다. 당시 고려 인구가 210만 정도였으니 10%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고려는 왜 귀화 정책을 펼쳤던 것일까?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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