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무더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틀연속 열대야가 찾아 온 21일 밤 대구시내 주요 공원과 신천, 팔공산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에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시민들은 자연풍을 만끽하며 잠시 무더위를 잊었고 가벼운 운동으로 이열치열식 피서를 하거나 가족 단위로 야외에서 장기 투숙을 하는 '텐트족'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자연풍이 최고지요"
21일 오후 8시 20분쯤 대구 신천 경대교 둔치에서 만난 진호익(48·남구 대명동) 씨는 일행 4명과 함께 돗자리를 깔았다. 진 씨는 "열대야 때문에 야외로 나왔는데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마음까지 여유롭게 한다"며 "에어컨 바람대신 자연풍을 만끽할 수 있고, 전기료도 아낄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했다.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에는 1천명 남짓한 시민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더위를 피했다. 이옥희(54·여 )씨는 "두류동에 30년째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두류공원 때문"이라며 "열대야가 지속돼도 공원에 나와 바람쐬고 들어가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대구스타디움 주변 공원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곳은 청계사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이 자연냉방 효과를 내 인기가 높은 곳. 경산에서 왔다는 정훈(22) 씨는 "온종일 직장에서 냉방기 바람을 쐬다가 이곳에 오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며 자연풍 예찬론을 펼쳤다.
수십년간 대구시민들의 피서지로 사랑을 받아 온 곳은 단연 팔공산 동화지구다. 직장동료들과 동화지구 잔디밭에 텐트를 친 강덕수(29) 씨는 "내일 출근 걱정보다 열대야로 잠 못드는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며 "시원한 곳에 있다가 집에서 샤워하고 나면 푹 잘 수 있다"고 했다.
◆"운동으로 더위 이겨요"
'한밤 운동'도 열대야 극복의 단면이다. 장마가 끝난 뒤로 매일 저녁 신천 주변을 달린다는 김두환(28·수성구 수성동) 씨는 "땀을 흘리며 신천을 달리면 일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 사라진다"며 "평일에는 친구 만날 시간이 없는데 이곳에서 만나 함께 운동도 하고 담소도 나눈다"고 만족해했다.
신천에는 가족단위 운동객들이 넘친다. 매일 저녁 대학생 딸과 함께 신천교에서 대봉교까지 걷기운동을 하는 김순영(52·북구 산격동) 씨도 그중 하나다. 김 씨는 "신천에 와서 운동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며 "집 근처에도 공원이 있지만 신천까지 일부러 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천교 둔치에서 만난 황성준 (37·수성구 만촌동) 씨는 자전거를 타며 부자간의 정을 쌓고 있었다. 자전거 뒷좌석에 세살배기 아들을 태운 황 씨는 "덥다고 집안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 신천에 아들을 데리고 나와 자전거를 타면 아빠 노릇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두류공원 마루매점에서 성당못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운동을 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오후 9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걷고 뛰는 인파는 줄지 않았다.
◆"온가족이 모일 수 있어 더 좋은 열대야"
21일 오후 9시 팔공산 동화지구 야영장 일대는 40여 개의 텐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기투숙용 텐트에서부터 간단히 잠만 잘 수 있게 모기장만 마련한 텐트까지 다양했다.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보름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정무영(52·경산 옥산동) 씨는 "주말에 한번 이곳에서 지냈는데 너무 시원하고 좋아 8월 중순까지 머무를 생각"이라며 "열대야가 심한 날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더위가 싹 가신다"고 했다.
야영장뿐 아니라 동화지구 일대는 열대야를 피하려는 가족과 커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열대야가 시작된 20일부터 수태골 주차장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성정미(50·여·동구 방촌동) 씨 가족은 열대야가 오히려 반갑다. 성 씨는 "집에서 저녁을 싸와서 이곳에서 먹고 누워서 쉬고 있는 중"이라며 "더위도 피하고 전기료도 아끼고,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노경석·황수영 인턴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