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이다. 한 고비를 넘겼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버티고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6·2 지방선거 패배 후유증을 7·28 재보선 승리로 말끔히 씻어내고 야심 차게 집권 후반기를 시작하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꿈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김태호 총리 및 신재민·이재훈 장관 후보자의 낙마는 레임덕의 시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부동산 투기 의혹·위장전입 등 후보자들의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당초 '모두 같이 간다'는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집권 후반기 권력 누수 가시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꾀함)으로 요약된다. 힘이 빠지기 시작한 대통령의 입장보다 20개월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걱정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공개로 열린 27일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은 '걸레 같은 행주'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고,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후보자 3명이 30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한나라당 의원 워크숍 직전 전격 사퇴한 것도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이 고집을 꺾고 민의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여권 관계자는 "오히려 '소통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갖게 돼 낙마 파동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결연하게 새 출발을 하는 기회가 됐다"는 기대 섞인 해석도 내놓았다. 또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파국만은 피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29일 총리 후보자 사퇴 파문과 관련, "향후 청와대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공정한 사회와 관련해 총체적으로 노력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파동은 우리 사회의 높아진 눈높이가 정착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각종 인사에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나 사회 상식상 투기로 의심받을 수 있는 주택 거래 등이 발견될 경우 원칙적으로 배제한다는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정권이든 임기 말 레임덕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기를 얼마나 늦추느냐는 이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이 레임덕의 위기를 대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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