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급성림프성백혈병 앓는 류호은 씨

"아들 셋이나 있는 제가 안나으면 안돼죠"

-30대 중반 나이에 무럭무럭 자라는 세아들. 급성림프성백혈병을 앓는 류호은 씨는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지만
-30대 중반 나이에 무럭무럭 자라는 세아들. 급성림프성백혈병을 앓는 류호은 씨는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지만 '희망'을 이야기 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뚜렷한 때문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생각해야죠. 허허."

6일 대구시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서 만난 류호은(38·경남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씨는 참 밝았다. 호은 씨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할 때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보지 않았더라면 건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머리숱이 많아서 골치였는데 잘됐다"고 웃는 호은 씨는 '급성림프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 부인 우정희(36) 씨는 걱정스런 얼굴을 하면서도 "우리 남편은 참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당연히 나아야죠."

호은 씨는 완치 확률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재단하지 않았다. 급성림프성백혈병의 생존율이 50%라니, 병에 걸린 환자 중 절반이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는 제게 중요치 않아요. 저는 아직 젊어요. 아들도 셋이나 있고. 저 같은 사람이 안 나으면 누가 낫겠어요."

그가 희망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세 아들 때문이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맏아들 동한(9), 둘째 심초(7), 셋째 현성(6)이 그들. 호은 씨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믿고 있었다.

호은 씨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올해 4월이었다. 이 치료를 하러 치과에 다녀온 뒤로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호은 씨는 3주간 계속되는 출혈이 백혈병의 징후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몸에 조금 이상이 있다는 것 정도로 여기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4월의 끝자락에 그는 잠시 일을 접고 대구 가톨릭대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급성림프성백혈병'에 걸렸다는 검사결과를 받았지만 호은 씨는 처음에 인정하지 않았다. 보험도, 모아둔 재산도 없는 시골 사람에게 백혈병은 더없이 낯설었다.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합니다."

호은 씨의 세 아들은 아버지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다. 강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희 씨는 "남편은 지난주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집에 누워만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아이들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말했다. 호은 씨는 아버지의 병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먼저 염려했다. 자신은 쓰러질 듯 아파도 자식 걱정이 앞서는 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호은 씨는 "우리 큰애가 이제 눈치를 챈 것 같다"고 했다. 큰아들 동한이가 백혈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만큼 철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동한이는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큰아들은 안방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다리도 주물러 주고, 두 동생을 데리고 밖에 놀러 다니며 장남 노릇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개학을 해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지만 여름방학 때는 호은 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 세 아들은 방학 때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정희 씨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준 것 같아 애들에게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농촌에서 나고 자란 세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줘서 호은 씨 부부의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아이들은 뒷산과 개울을 놀이터 삼아 매일 밖에서 뛰어논다. 지렁이를 잡고, 논에 가서 미꾸라지도 건져온다. 큰아들이 대장이 돼 두 동생을 데리고 들판을 쏘다닌다. 자연이 아이들을 돌봐 주는 셈이다. 산과 들, 나무가 보모가 돼 준 덕분에 정희 씨는 남편 병간호에 집중할 수 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호은 씨는 "병에 걸린 뒤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이 한 달에 150만원이 안 됐지만 도움 없이 잘 살아왔는데…"라며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것조차 미안해했다. '힘들어도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기', 이것은 호은 씨 삶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타인의 도움을 받고 이후에 갚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백혈병은 혼자서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벅차다. 어머니의 시골집에서 다섯 식구와 함께 살고 있는 호은 씨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고추농사를 짓는 홀어머니가 자신의 치료비를 대줄 수도 없고, 아내가 일을 할 수도 없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더 이상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막노동을 하며 홀어머니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 온 호은 씨는 그래도 복(福)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나아야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동네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 "병은 소문을 내야 빨리 낫는다"며 성금을 모아주고 갔다. 정희 씨는 "2차 항암치료까지 받으며 치료비가 1천만원 넘게 들었는데 동네 분들과 친척들이 모아준 돈으로 여기까지 버텨왔다"며 눈물을 삼켰다.

호은 씨는 미래에 대해 자꾸 이야기했다. '내가 나으면 어떻게 하고 싶다'는 가정을 앞에 내세웠다. 반드시 살 것이라는 희망이 그에게 있었다. 호은 씨는 "세 아들을 잘 키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 아이들을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키울 겁니다. 받은 것을 배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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