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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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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면 추석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세 번째로 맞는 추석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 집에 가는 일이 두렵고 가슴 떨린다.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엄마가 기거하던 방에선 엄마 냄새가 나고, 장독대엔 엄마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

"소원을 빌면 보름달이 소원을 들어준다 카더라."

예닐곱 살 된 내게 엄마가 말했다. 참말이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이미 내 머릿속에는 빌어야 할 소원들이 줄을 섰다. 식구들이 방에 들어가길 기다렸다. 식구들 앞에서 소원을 비는 건 왠지 부끄러웠다.

고요한 밤중에 혼자서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아주 순해졌다. 그 진지한 모습을 엄마가 보았다.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엄마가 물었다. 나는 얼굴이 발개졌다. 부끄러운 소원을 빌어서가 아니라 소원은 원래 비밀스러워야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가 예닐곱 살의 계집아이가 된다. 보름달을 우러른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노력해도 예닐곱 살의 계집아이 같은 순한 마음과는 접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주풍의 원피스를 갖고 싶고 공기놀이와 땅따먹기를 잘하고 싶다던 소원이 있던 자리는 성공과 야망과 부를 향한 세속적인 욕심들이 장악해버렸다. 소원을 빌기에도 부끄럽다. 나는 와글거리는 그것들을 몰아내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잠시 흔들리다 그것들은 다시 합쳐져 내 마음을 어지럽게 짓밟고 다닌다.

나는 소원을 접었다. 마음을 들킨 게 부끄럽다. 작은 계집아이의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가 욕심 때문에 헝클어졌다. 시간의 두께가 쌓여오는 동안 세월의 무게가 늘어나는 동안 마음의 때도 불어났다. 내 마음속에는 이제 순수했던 예닐곱 살의 계집아이는 없다. 계집아이가 살고 있지 않은 마음엔 동심도 자라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를 키운 건 결핍이었다. 언니가 입던 바지를 물려받아 입어야 했고 과자는 특별한 날에만 먹었다. 한 켤레의 운동화로 1년을 살 때도 있었고 부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 유년에 비하면 나는 더 많이 가졌고 더 많은 걸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욕망들은 기하급수로 불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의 행복지수는 눈금 제로에 가깝다.

임수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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