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도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와 닿는 바람이 서늘합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들판은 노랗게 물이 들고 있습니다. 폭염에 맞불이라도 지피듯 무성했던 배롱나무도 어느새 사위어가고 나뭇잎마다 제법 붉은빛이 도는 가을입니다. 때 아니게 쏟아져 내린 비에 나라 안이 뒤숭숭하지만 한가위를 지나면서 달빛은 더 맑고 높아졌는데요. 바람이 마음속으로 부는 듯한 가을밤엔 편지를 하고 싶어집니다. 편지지를 펼쳐들면 거기 달빛이 가득 내려앉습니다. 손끝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줄 것 같으니까요. 은행나무 노랗게 물드는 길을 천천히 걸어 닿은 우체국에선 우편번호를 찾느라고 잠시 뜸을 들일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님이나 친구, 연애 시절 말고는 편지라곤 부쳐보지 못한 아내나 남편이면 좋겠고 늘 잔소리꾼 역할만 했던 자식이라도 좋습니다. 편지를 쓰지도 받지도 않는 요즘이라면 누구라도 그대가 된 행운을 얻게 된 사람은 잠시 행복감에 젖지 않을까요.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조금은 아련한 느낌으로 돌아가 어떤 생각에 젖기도 할 것입니다. 사는 일이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멀어지고 만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기를 들게 될지도, 가까운 우체국으로 달려가 엽서라도 한 장 보낼지도 모르겠네요.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축복 같은 이 가을이란 계절도 점점 짧아져서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답니다. 가을이 없어지면 그나마 남아있던 편지도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편지는 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가을 없이 맞는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것처럼 편지가 사라진 삶도 어쩐지 허전하다고 느껴지는 건 저만 그럴까요?

한 편의 시 편지를 부치며 글을 마칩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어느 가을날에는 햇살을 깎아/ 막 돋는 아침의 눈동자에 편지를 씁니다/ 아침이 끌고 나온 들판의 널따란 등에/ 시시각각 푸른빛이 변하는/ 해 뜨는 쪽 하늘 한 자락 끌어와 쓰고/ 오후로 가는 나뭇가지에도 쓰고/ 가지에 걸린 낮달의 흰 얼굴에도 씁니다/ 쓰지 못했던 말들이 너무 많아/ 끝도 없이 써지는 말끝에 땀이 배입니다/ 잠깐 비가 오고 문득 밤입니다/ 햇살도 끝이 닳아/ 가물가물 깜박깜박 써집니다/ 당신께는 별을 부쳤다고 우길 생각입니다/ 하늘 가득 써놓은 별은/ 몇 번의 가을이 가고 어느 날 다시 오는 봄처럼/ 오래 읽혀지겠지요/ 안드로메다 너머 우체부 은하와 편지 은하의 사이처럼/ 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해도/ 별과 별 사이는 본디 멀어지는 것/ 이제는 다 괜찮습니다. 원 태 경내과의사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방한 것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
대구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천억원 규모의 대구로페이 발급과 5천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며,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변호사 업무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며, 별도의 사무실 없이 주거지를 사무소로 등록하고 상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