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인사청문회 무용론'이다. 2000년 공직사회의 도덕성과 자질, 정책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도입된 청문회가 후보자를 죄인(?) 취급하면서 '도덕성 흠집내기의 장(場)'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의 정책을 수행할 능력이나 가치관, 이념 등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또 청문회를 두고 여야가 '이것 줄게 저것 다오' 하는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야권 내부에서도 "이런 청문회는 가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달 29, 30일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바라본 일부는 "한 달 전 김태호 후보자 때와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입을 모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검증하겠다고 벼른 야당은 무딘 칼로 일관했고 여당은 후보자 감싸기에 혈안이 됐다. 김 후보자의 ▷부동시에 따른 병역기피 의혹 ▷동신대 특혜지원 논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이상한 씀씀이 ▷감사원장 재직시 4대강 감사 결과 발표 연기 등 4대 의혹이 제기됐지만 "껍데기도 벗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급기야 충북 출신인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29일 청문회 의사진행 발언에서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엄정한 검증을 해야 할 국회 수뇌부가 청문회 직전 행정부 최고수장인 대통령과 술과 밥을 곁들여 만찬을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청문회 전날인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만찬회동을 가진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호남 출신이라서 야권의 맹공은 없을 것" "김 후보자가 통과되면 여야의 주고받음이 있었을 것" 등등의 소문이 돌았는데 결국 사실이 된 셈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청문회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청와대가 인사청문회 대상자로 내정하기 전에 도덕성 검증을 마친 상태로 인사청문회는 정책 능력 검증이나 현안에 대한 가치관 등을 확인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실한 사전 검증으로 상처만 남는 청문회를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입각 제의를 받은 후보자의 사생활이 모조리 드러나면서 청문회 공포증을 고민하다 결국 고사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미국은 인사 청문회 사전 검증 조사항목 230여 개를 선정해 청문회 전까지 조사를 완료한다. 하지만 이것은 행정부의 1차 조사일 뿐이고 관련 상임위원회의 2차 조사도 있어 사전 검증 기간만 평균 석 달 정도 걸린다. 당연히 청문회장은 능력과 정책 질의의 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의 '빅4 문제'인 '위장전입, 병역기피, 납세기피, 부동산 투기'는 사전 검증에서 모조리 체크되고 여기에 걸릴 경우 청문회 대상에서 빠지고 마는 것이다.
지난달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마친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한 각료의 탈세 문제가 불거지자 '이 사람이 내게는 꼭 필요하지만 그대로 임명할 경우 미국이 '있는 사람의 법'과 '없는 사람의 법'이 적용되는 두 개의 미국으로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 위해 지명을 철회한다고 말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죄송하다, 반성하고 있다, 맡겨 달라'는 식의 인사청문회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여론이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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