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난소암 앓는 지적장애인 이민정 씨

'퍼즐' 좋아하는 서른살 아가씨가 몹쓸 병에…

지적장애에다 난소암을 앓고 있는 이민정 씨가 퍼즐놀이를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지적장애에다 난소암을 앓고 있는 이민정 씨가 퍼즐놀이를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올해 서른이 된 아가씨가 퍼즐을 맞춘다. 퍼즐 조각을 꼼꼼히 살피며 이리저리 맞추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퍼즐 맞추기는 지적장애 2급인 이민정(가명·중구 남산동)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민정 씨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자란 사람이다. 간질까지 앓고 있는 그에게 더 무서운 병이 찾아왔다.

"나도 엄마처럼 죽는 거예요?"라며 사회복지사에게 묻는 민정 씨. 난소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죽음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만은 안다.

◆말 못할 상처

5일 오후 2시 중구 남산동 까치아파트에서 만난 민정 씨는 취재진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는 가슴속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사회복지시설의 여자 장애인 그룹 홈에서 지내는 민정 씨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을 앓는 식구 셋과 사회복지사 김푸름(26) 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이렇게 집을 떠나 새 식구를 만나기까지는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다.

김 복지사는 "민정 씨가 집에 가는 걸 무서워한다"고 했다. 시설에 들어오기 전 그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매일 아침 자동차 부품 조립공장에 일을 하러 나섰고, 아버지는 염색공장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일터로 떠난 집에는 민정 씨 혼자 남겨졌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가 없는 낡은 한옥집에 무방비로 남겨진 셈이다.

아버지 이병철(가명·61) 씨는 "동네 사람이 딸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말했다. 이웃에 사는 60대 할아버지가 그녀의 몸에 손을 댄 것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비로소 입을 열었다.

"동네에 나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면 할수록 깊이 파이는 상처 때문에 좀체 입을 열지 않았고 외숙모의 도움으로 용의자를 찾았지만 자백을 받기도, 증거를 찾기도 어려웠다.

지체 장애 3급인 아버지도 용의자와 싸울 형편이 안 됐다. 아버지는 "평생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 나쁜 사람을 지금도 동네에서 만난다"고 말할 뿐이었다. 민정 씨는 그때부터 집을 거부했다. 그렇게 2008년 5월 시설로 옮겨졌다.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

아버지는 민정 씨의 전부다. 시설에서도 항상 아버지를 찾는 그는 집은 싫어해도 아버지는 참 좋아한다. 옷을 사러 갈 때도 "아빠랑 가야 한다"며 사회복지사를 졸라댄다. 보통 사람만큼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한 민정 씨는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마음을 표현한다. 그에게 표현의 정도와 사랑의 질량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보살필 형편이 못 된다. 그의 왼손에는 엄지 손가락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20년 전 염색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손가락 네 개를 잃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사라진 손가락보다 더 귀한 식구들이 있으니 남은 여섯 개의 손가락으로 묵묵히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아내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우울증과 불면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매일 밤 잠들지 못해 뒤척일 때면 아내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 아버지의 눈에는 서러운 눈물이 흐른다. 나를 두고, 딸을 두고 떠나버린 아내…. 여태까지 일해왔던 염색공장을 지난 3월 그만둔 뒤 매달 70만원의 실업급여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자기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도 버거운 아버지는 딸을 시설로 보낼 때도 붙잡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간질을 앓는 민정 씨를 위해 약을 지어 딸의 새 집으로 가져다주는 것은 여전히 아버지의 몫이다.

◆민정 씨를 덮친 암

김 복지사는 민정 씨를 보고 "참 부지런하다"고 말했다. 김 복지사가 청소를 할 때면 조용히 다가와 빗자루질과 설거지를 거들 만큼 부지런하다는 것. 밥을 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조금씩 스스로 하는 일을 배워가는 민정 씨에게 큰 병이 찾아왔다.

지난달 9일 그는 심한 복통 때문에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난소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난소암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암'의 존재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다.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있었던 어머니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이 위암이었고, 현재도 투병 중인 외할머니를 괴롭히는 것도 위암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건소에서 170만원 정도 의료비 지원을 받아 지난달 15일 난소를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지난달 8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 다음달부터 수급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 남아있는 암이다. 퇴원을 하고 집에서 지내는 민정 씨는 힘겨운 항암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그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잘 알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묻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옆에 있던 김 복지사는 "민정 씨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며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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