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소득 보육도우미, 시민단체의 '힘겨운 성공'

이용제한 26가구만 혜택…지원대상 더욱 확대해야

가정보육사 박옥연 씨가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간 시간 동안 수민이와 성훈이를 돌봐주고 있다.
가정보육사 박옥연 씨가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간 시간 동안 수민이와 성훈이를 돌봐주고 있다.

"성훈(가명)아, 오늘 잘 놀았어? 기침은 많이 안 했고? 수민(가명)이는 어린이집에서 재미있었어?"

오후 3시 30분, 집 앞 골목에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자 박옥연(56) 씨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3살 성훈이, 6살 수민이는 박 씨를 따라 집으로 들어간다. 박 씨는 아이들을 씻기고 준비한 간식을 먹인다. 자상한 할머니처럼 아이들을 일일이 돌봐주는 박 씨는 가정보육사다. 박 씨는 엄마가 일하러 나간 시간에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 수진(가명·8)이가 학교를 마치는 시간인 오후 4시 30분이 되면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간다. 요즘 성폭력이다 뭐다 해서 귀갓길이 걱정인 엄마가 부탁한 일이다.

박 씨의 근무 시간은 오후 3시부터 9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 간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씻긴 후 저녁을 챙겨주며 숙제하는 것을 봐주거나 아이를 재우는 것이 박 씨의 일과다. 고만고만한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지만 보람도 크다.

박 씨는 최근까지 간병사로 일했다. 노인 간병은 아무리 성의를 다해도 환자가 돌아가시는 일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성훈이는 처음 만났을 때는 19개월이라 말도 못하고 걷는 것도 어설펐지만 이젠 자기 의사표현도 다 하고 뛰어다닐 정도로 많이 컸어요. 수민이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들이 하루하루 잘 자라는데다 저에게도 정을 많이 줘 힘들지만 예뻐요."

◆환영받는 저소득층 보육도우미 서비스 사업

박 씨는 (사)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파견한 가정보육사다. (사)대구여성노동자회는 5월부터 '저소득층 가구 보육서비스를 위한 찾아가는 가정보육사'를 파견하고 있다. 여성장애인가정, 장애아가 있는 저소득 가정, 전국근로자 평균소득 50% 이하 한부모가정, 월소득 250만원 이하 저소득 맞벌이 가정 등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국 가구 평균소득 70% 이하의 가구는 시간당 5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하다. 이용 대상도 만 3개월부터 만 10세까지 폭이 넓다. 보육사들은 전문 양성과정을 이수한 전문가로, 아동 발달단계에 맞춘 맞춤형 보육프로그램 과정을 제공한다.

이처럼 저소득층에 대해 무료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여성재단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저소득층 보육 지원 사업이 앞으로 더 많은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대구여성노동자회 정현정 팀장은 "저소득층의 경우 보육 서비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편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너무 힘들지만 아이들 때문에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여성들이 꽤 많다"면서 "보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수민이와 성훈이 엄마 김나영(가명·40) 씨도 아이를 맡기고 난 후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아는 동생의 소개로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일을 하게 돼 너무나 좋다"면서 "보육 선생님이 친정 엄마같이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는 덕분에 잔업도 자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 제한돼 더 많은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최대 40가구에 대해 가정보육사를 지원할 수 있으며 현재 지원하고 있는 곳은 26가구. 저소득층이 아닌 가정도 돈을 내면 이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 가구가 이용하기에도 빠듯하다. 야간일을 하는 필리핀 엄마와 아빠를 위해 낮에 아이를 돌봐주기도 하고 한부모 가정에도 찾아가는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정 팀장은 "일요일에는 일할 보육사가 없어 지원을 못 하는데 의외로 일요일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사실 대구여성노동자회는 보육 서비스뿐만 아니라 아이와 가족의 인성 교육에 치중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관심 영역을 가족 전체로 넓혀 바라보는 것.

엄마가 불안정한 심리를 보이는 경우 보육 선생님은 엄마의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또 아이에게서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징후를 포착하면 '솔루션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솔루션 커뮤니티란 아동복지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교수, 시민단체 대표 등 전문가들이 모여 아동의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주는 집단이다.

사실 저소득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경우 아이에 대한 정서적 보살핌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생계에 매달리느라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주말에는 피곤에 지치기 일쑤다. 그래서 정서적 불안정을 보이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이같이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근로자 등에 대한 배려가 없다. 저출산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이 많아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 팀장은 "저소득 가정에 대한 실질적인 보육 지원과 정서적 지원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의 대구여성노동자회(www.dgwwo.org) 053)428-6338.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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