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근 텃밭에 사람 출입을 말라는 '금줄'이 높게 쳐져 있는 것을 보니 채소값이 비싸긴 비싼 모양이다. 아예 철망을 두른 밭도 있고 심지어 'CCTV 촬영 중'이라는 팻말도 등장했다. 재미 삼아 지은 채마밭이 '금붙이'가 됐으니 가꾼 채소를 나눠 먹던 푸근한 인심도 사라졌다. 어느 해는 수확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며 갈아엎던 배추밭이 이렇게 상전벽해가 됐으니 이미 밭떼기로 팔아버린 농민이나 소비자나 분통 터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돼지와 옥수수의 생산량과 가격이 2년을 주기로 서로 엇갈리며 오르내리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됐다. 어느 해 옥수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가격이 폭락한다. 그러나 돼지 사육 농가로서는 행운이다. 싼 옥수수를 사료로 돼지를 대량으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기에는 돼지 사육 두수가 급증, 오히려 사료인 옥수수가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옥수수 가격은 폭등하고 돼지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이를 옥수수-돼지 사이클(corn-hog cycle)이라고 한다. 당연히 정부가 개입하여 농가가 매년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17세기 영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킹은 '곡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곡물 가격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는 '킹의 법칙'을 내놓았다. 당연히 '공급이 조금 늘어나면 가격이 급락한다'는 역(逆)도 성립한다. 안타깝게도 이 두 법칙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의성농민회는 어제 안계평야에서 수확을 앞둔 벼논 2천300㎡(약 700평)를 갈아엎고 정부에 쌀값 보상을 요구했다. 쌀값이 해마다 폭락, 올해는 조곡 40㎏ 한 포대에 4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쌀 한 포대가 배추 4포기와 맞먹으니 논농사 짓는 농민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쌀과 배추는 우리 국민 생필품 중의 생필품이다. 이런 품목이 극과 극의 대접을 받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농산물은 '킹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공산품보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수급 대책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 이런 생필품조차 사전 파악이 안 됐으니 위기 시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아찔하다. 미국에서 우유 가격이 하루아침에 10배로 뛰었다면 정권이 바뀔 일이 아닌가.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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