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 투병생활 속 남매 키우는 이경태씨

"걷지 못하지만 엄마 노릇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남매를 혼자서 키우고 있는 이경태 씨는
남매를 혼자서 키우고 있는 이경태 씨는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어서 오세요…."

12일 오후 경북 경산 진량읍의 한 아파트에서 기자를 맞은 이경태(40·여)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경태 씨의 낯빛은 검게 변했고 눈은 흰자위를 찾기 힘들 정도로 노랬다. 중학생 남매 둘을 혼자서 키우는 싱글맘 경태 씨는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경태 씨는 "여태 그래왔듯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억척스런 싱글맘

경태 씨는 자신의 이름에 한 번도 불만을 품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자같은 이름이 콤플렉스였을 것이란 예상을 비켜간 대답이었다. 그는 "우리 아버지가 내 밑에 남동생이 태어나야 한다며 사내 이름을 붙여주셨다"고 말했다. 경태 씨는 이름 만큼 강한 삶을 살아왔다. 10년 전 바람이 난 남편과 이혼한 뒤 당시 4살, 5살이었던 용민(가명·14)이와 혜주(가명·15·여)를 혼자서 키워냈다. 아이들에게 경태 씨는 엄마인 동시에 아빠다.

그는 결혼 전부터 근무했던 한 제과업체에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3교대로 근무하며 과자 포장하는 일을 했다. 공장에선 '손이 빠르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다 만두 공장, 닭고기 공장으로 이직했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실감한 뒤 10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뒀다. "여자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장장은 절대로 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기로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헤어 디자이너였다. 두 아이를 먹여 살리려면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이 필요했던 것. 직업을 대변해주듯 경태 씨 집 거실 TV 밑에는 '남자 연예인 머리', '여자 연예인 최신 헤어 스타일'이란 이름이 적힌 파일 4개가 있었다. 파일 속에는 조인성과 장동건, 김남주 등 스타들의 다양한 머리 스타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잡지를 보다가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나오면 가위로 오려서 스크랩해뒀다"고 말하는 경태 씨는 부지런한 헤어 디자이너였다.

◆하루종일 누워지내는 처지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는 경태 씨를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게 만들었다. 올해 3월쯤 피로가 몰려오고 다리에 힘이 없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경태 씨의 경우 간이식을 받아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다. 큰딸 혜주가 기특하게 "엄마한테 내 간을 줄 거야"며 나서고 있지만 만 16세가 돼야 가능한 일이다. 경태 씨는 혜주가 더 자라거나, 새로운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경태 씨 친정은 어머니와 남동생을 제외한 식구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올해 66세인 경태 씨 아버지는 암 수술만 9차례 받았다. 신장에서 시작된 암이 갑상선까지 전이되는 바람에 아버지는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1남 3녀 중 둘째인 경태 씨 남매 중에 건강한 사람은 남동생뿐이다. 여동생도 목 부분에 혈관이 사라져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경태 씨의 남동생이 집안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첫째는 제빵사, 둘째는 의사가 꿈

아픈 엄마 때문인지 중학생인 아이들은 벌써 진로를 정했다. "엄마 뭐 먹고 싶어? 오늘은 미역국 끓여줄까?"라며 엄마 노릇을 대신하고 있는 혜주는 제과제빵학과에 가고 싶어 한단다. 경태 씨는 "혜주는 빨리 돈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공부를 곧잘 하는 둘째 용민이의 장래희망은 의사다.

경태 씨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27만원과 30만원 남짓인 국민연금, 장애연금 등을 포함해 80만원 정도.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돈이라 아이들 교육은커녕 수술을 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16년간 살았던 76㎡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4천만원 대출을 받은 터라 더 이상 기댈 곳도 없다. 스쿠터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갔던 경태 씨는 '사고 확률이 높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보험료가 높다'는 소리를 듣고 보험을 들지 않았다.

이런 경태 씨가 얼마 전 1994년식 중고차를 샀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엄마 노릇'이기도 하다. 걸음을 걷는 것조차 버거운 경태 씨에게 운전은 불가능한 일. 그래도 경태 씨는 희망을 품는다. 그는 "차 운전 한번 제대로 못 해봤는데 몸이 다 나으면 꼭 아이들 데리러 학교에 가고 싶다"며 웃음을 지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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