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 ⑮대구경북의 미래 준비 어떻게?

홍철 연구원장 대담- "우리 市·道가 주체적으로 진행해서, 성공한 사업

대구경북이 준비해야할 미래는 어떤 것일까.

'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 시리즈를 마치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석학인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과 대담을 가졌다.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도시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역이 생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2시간여 동안 대담이 이어졌다. 홍 원장은 줄곧 "우리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구시와 경북도가 추진하는 대다수 사업들이 '현실 인식'을 전제하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이날 대담은 박병선 본사 사회1부장이 진행했다.

-대구경북이 추구하는 미래 전략 산업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

▶결론부터 말하면 대구는 신성장 산업을 유치하거나 육성하기가 힘들다. 신성장 산업의 필수는 대기업 유치다. 즉 대기업이 자금과 R&D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성장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역에 대기업이 없고 R&D 기능도 약하다. 그리고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이 대구로 찾아올 가능성도 상당히 낮다. 실제 대구가 반쪽의 첨단복합의료단지를 유치했지만 이미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들은 대학병원과 연계해 '신약'을 개발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현 정부는 한국 전체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90분 내에 전국토를 연결하는 교통망을 형성하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역적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즉 수도권 집중화가 심각한 한국에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 대구경북은 세수 문제부터 심각하다. 곳간에 쌀이 없는데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

-지역 성장에 있어 대구시나 경북도의 역할이 상당하다. 과연 미래를 준비할 역량이 있는지 평가해 달라.

▶예전보다는 시와 도의 사고가 많이 변했고 발로 뛰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사업이라도 주체적으로 진행해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너무 큰 사업에만 매달렸고 남(중앙정부)에게 의존해온 탓이다. 작은 사업이라도 우리가 계획을 세운 뒤 역량을 쏟아부어 성공한 전례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을 인정한다면 대구경북은 과연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는가.

▶10년간 공들인 밀라노 프로젝트를 보자. 섬유 생산 기능을 버리고 패션을 추구하다 결국 둘 다 놓친 꼴이 됐다.

패션은 섬유 산업의 최고 정점이다. 섬유와 염색 공장이 있다고 해서 과연 패션 산업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다행히 기능성·첨단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대구 섬유가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 그동안의 열정을 직물·원단 생산에 쏟아부었다면 휠씬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대구경북의 산업 구조를 보면 50% 정도가 기계, 금형, 열처리 등 산업의 기초가 되는 뿌리산업이다. 이를 중점 육성해야 한다. 아직도 성서공단이나 3공단에 가면 낮은 임금의 숙련도가 높은 기능공이 풍부하다. 우리의 장점을 살리며 먹고 살아야 한다.

-부산과 인천이 추구하는 성장 전략과 대구를 비교해 달라.

▶이제 인구 규모로 3위나 4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마 수도권 시장과 항만, 공항을 바탕으로 한 인천은 조만간 부산을 제치고 2대 도시로 부상할 것이다. 즉 대구를 타 도시와 비교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 대구는 인구 200만이 무너지더라도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뭘 먹고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남이 뭘 해서 잘 된다고 해서 따라가서는 안 된다. 환경과 조건이 너무나 상이하다.

-그렇다면 대구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대구는 문화와 역사적 잠재력을 가진 도시다. 우리만의 장점이 많다. 예전 근현대사를 볼때 대구는 도전과 개척 정신이 있던 도시였다. 안타깝게 7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중앙 정부에 의존하는 행태만 보여왔다. 산업도 중앙 정부 예산에 의존한 '시혜성 사업'만 해왔다. 우리의 현실을 토대로 예전의 긍지와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

-대구와 경북의 행정분리가 두 지역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많다. 대구경북 통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달라.

▶선택이 아니라 대구경북 통합은 필수다. 행정적으로 나눠지면서 두 지역 모두 '우물안 개구리 사고'를 한다. 구미 공단 땅은 평당 50만원이다. 대구가 달성에 유치한 국가산업단지는 150만원이다. 과연 어느 기업이 대구에 오겠는가. 대구는 구미와 포항이라는 배후 산업단지를 갖고 있는데도 90년대 이후 국가산업단지 지정에만 매달려 왔다. 대구에는 대기업이 없지만 구미와 포항에는 대기업이 산재해 있다. 통합을 하면 대구는 저절로 수많은 대기업을 가진 도시가 된다.

-성장 도시 사례를 보면 대학의 역할이 상당하다. 지자체와 지역 대학 간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지역 대학의 역량이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져 있다. 우수한 교수들의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일부 교수들은 강의는 대구에서 하고 집은 서울에 있다. 만약 지역 내 가장 우수 집단인 교수그룹이 역할을 잘해왔다면 지역 발전에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경북대 전자공학부가 구미로 자리를 옮겼다면 삼성이나 LG연구소가 수도권으로 떠나갔겠는가. 지자체뿐 아니라 대학들도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중앙 정부 예산 따올 생각보다는 지역 중소업체 협력 방안에 주력해야 한다.

-대구경북 성장의 축인 구미와 포항의 미래 전망은 어떤가.

▶구미는 한때 침체기에 빠져들었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다. 구미시가 주도한 산업 구조조정이 성공한 때문이다. 이제 대기업 생산기지로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향후 기능 인력 양성만 잘하면 발전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은 포스코가 경영을 잘하면서 지금껏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 철강을 빼고는 다른 산업 구조가 없다. 다른 산업을 키울만한 인력이나 자금도 부족하다. 포스코와 포스텍을 활용한 발전 방안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 특히 영일만 신항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 환동해권 중심 항만으로 속초, 울산, 부산, 포항이 있다. 이미 부산이 주항이며 두 번째는 수도권을 배후로 가진 속초다. 배후 단지 만들어 스스로 물량을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발전 도시와 정체 도시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구경북은 지금 뭘 해야 하는가.

▶먹고 살 수 있는 4~5개의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 바탕하지 않는 뜬구름 잡는 계획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욕'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현실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주가 주력한 '광산업'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물론 수도권과 비교할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산업기반이 없는 광주로서는 대단한 성과다. 대구경북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지원성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 대구경북이 살 길이다.

정리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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