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학의 분업화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이란 책에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어느 왕조가 몰락했을 때, 돈 많은 관리가 궁정의 요리사로 있었던 여인을 고용했다. 자랑하고파 여러 친구에게 궁정 요리를 맛보라고 초청했다. 초대한 날이 가까워오자 여인에게 궁정요리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여인은 요리 같은 것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 뭘 했었지?" "네, 전 만두 만드는 일을 거들었어요" "그래, 그럼 만두를 만들어라." "아뇨, 전 만두를 만드는 게 아니라 만두 속에 넣을 양파 다지는 일을 했어요." 결국 요리를 전혀 못했다.

정민 교수가 거전보과(鋸箭補鍋)를 설명하면서 자기가 겪은 경험담을 소개했다. 여러 날 갈비뼈 아래가 찌르듯이 아파서 일반외과에 갔다. 초음파를 찍으니 담석이 있어 담낭을 떼는 것이 좋겠다는 판정을 받았다. 내과 진료를 받으니 초음파 소견은 담석이 아니라 지방간 소견이므로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며칠 뒤 등에 부스럼이 돋아 피부과에 가니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의학은 지금 너무 많이 세분화되어 있다. 넓은 분야를 가진 내과나 일반외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이 속한 크지 않은 신경외과 안에도 10여 개가 넘는 세부학회나 연구회가 있다. 의학의 세분화는 확실한 장점을 가진다. 같은 질환의 환자들을 소수의 의사들에게 몰아줌으로써 단시간 내에 많은 임상경험을 쌓게 하고, 같은 질환을 다루는 의사들끼리 정보를 서로 교환하게 함으로써 깊은 지식을 쌓게 하여 환자들을 더욱 잘 치료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세부 전공이 잘게 나눠짐으로써 같은 과(科) 내에서도 서로 간 의견 교환이 드물어졌다. 혼자 혹은 소수만이 그 분야를 전공함으로써 경쟁할 상대가 적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이 분야는 내가 전공하는 분야이니 모두 내 환자다'라는 영역 확보의 도구화가 되었다.

임어당 선생이나 정민 교수가 언급한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처음 정민 교수를 진찰한 의사가 헤르페스 조스터 바이러스(herpes zoster virus)가 일으키는 대상포진의 초기증상이 담낭에 돌이 들어있는 것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본인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전국 일간지에 그런 경험담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학의 세분화에 대한 반성이 한번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간은 머리, 몸통, 사지로 나누어진 개체가 아니고, 여러 장기, 뼈, 근육, 혈관, 신경조직 등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생존해가는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나 잎에 대한 깊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숲의 전체적인 모습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동네 의원도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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