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4일 전(前) 북한 노동당 비서였던 고(故) 황장엽이 대전 현충원 사회 공헌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현충원 안장 자격 및 야당의 조문 참석 여부가 해묵은 보혁 갈등으로 불거지면서 더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파란 많았던 생을 산 그는 죽어서도 정치적 행적에 대한 평가로 인한 논란과 함께 적어도 한참 동안은 편히 영면하기가 힘들 것 같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후(死後)에 그가 살던 시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한 이치 같지만 생각보다 단순하지는 않다. 때로는 시대 변화에 따라 해당 인물의 삶이 과장, 축소되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의 방향, 객관적 업적과 상관없이 후대의 필요에 의해 전혀 엉뚱하게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몇 해 전 중국은 역사공정에서 중국 역사에서 신의와 충절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던 남송(南宋)의 악비(岳飛)를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하고 그를 모함하여 죽인 매국노, 간신으로 취급되어 중국인이 자신의 이름에 회(檜)자를 쓰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진회(秦檜)를 유연한 외교로 나라를 구한 인물로 복권하였다.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완성하기 위해 역사공정을 전개하고 있는데 바로 악비와 진회에 대한 재평가는 같은 중화민족(?) 간에 전쟁보다는 화친을 주장한 진회를 높이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라고 한 E. H. 카를 넘어 '역사는 현재의 정치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은 대목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생전에 자신이 추구한 삶과 후대의 평가가 엇갈린 대표적인 경우는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이 아닌가 싶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공양왕을 폐하려고 할 때 단심가(丹心歌)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가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당하였고 정도전은 이성계의 장자방을 자처하여 새 왕조의 개창(開創)에 앞장섰으며 유교적 이상에 입각해 조선의 국가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정도전은 1차 왕자의 난 때 정적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후 신원이 회복되지 않다가 조선 왕조의 끝자락인 고종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경복궁 설계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관직이 회복된 반면 조선 개국에 반대한 정몽주는 자신을 살해한 태종 이방원으로부터 문충공(文忠公) 이라는 시호를 받고 이후 중종 때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됨으로써 일찌감치 유교 국가인 조선의 성현으로 추대되었다.
분석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조선의 개국 여부가 조선 건국 후의 국정 방향을 둘러싼 권력투쟁보다 훨씬 상위 변수인데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도 그 후 하위 변수라고 할 수 있는 권력투쟁에 패해 후대 역사에서 매장된 경우이고 정몽주는 생전에 역사의 큰 흐름과 상반된 선택을 하였으나 권력의 필요에 의해 성현으로 추대된 경우이다.
황장엽은 하필 북한의 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에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당일 북은 김일성광장에서 대대적인 당 창건 기념 열병식을 거행하였으며 3대 권력 세습의 당사자인 김정은은 김정일과 함께 군대를 사열함으로써 3대 권력 세습을 공식화하였다.
필자는 선거제와 세습이라는 상반된 형식을 한데 묶는 북한의 창의성에 그저 놀랄 뿐이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선거와 세습 둘 중의 하나는 무조건 진실이 아니다. 남한에 있어 정치권력의 인적 구성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5년마다 전면 교체된다. 하지만 북한은 정치권력의 인적 구성에 있어 수십 년간에 걸쳐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 나라에서는 일단 등용되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신 노릇만 열심히 하면 밀려나는 법이 없다. 황장엽은 수령주의와 권력 세습에 반대하여 북한 체제에 등을 돌렸고 남한에 와서 줄곧 북한에 대한 반체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 하에서는 계륵 취급을 받았고 현 정부 들어 남북 간 긴장의 고조와 함께 다시 정부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역사 속의 인물이 된 황장엽.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승도(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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