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언어의 '유행'과 '실종'

세상에는 많은 유행이 있다. 옷에도 유행이 있고, 노래도 유행가가 있고, 정치 용어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정치 지도자가 바뀌거나 새로운 리더가 탄생하면 여지없이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한다.

그 '유행어'를 확산시키기 위해 많은 홍보비와 예산을 들여 반복 홍보에 들어가기 일쑤다. 반복 학습이 참 무섭다. 특정한 말이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고유명사'화 되어 버리고 만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일이 극대화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 들어서 유행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단연 '녹색 성장'이다. 참 멋진 말이다. 어찌 보면 21세기 트렌드를 겨냥한 세련된 카피 문구일지도. 그런데 왜 '녹색 성장'에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일까.

'녹색 성장'이 진정 의미를 발휘하려면 환경을 고려한 성장이어야 하고 상생의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비롯해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추진 등 여러 굵직한 사안들은 '성장'을 위해 '녹색'을 팔아먹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히트 유행어가 '녹색 성장'이라면 실종된 말은 어떤 것일까. 지난 정부 시절 많이 쓰였던 언어를 기억해 보면 아마도 '혁신' '개혁' '거버넌스' 등일 것이다. 요즘 이 단어들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특히 '거버넌스'라는 의미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왔었다. 거버넌스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협치(協治)라는 의미, 공치(共治)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민'관의 협력적 네트워크(network), 민'관의 파트너십(partnership) 등 이러한 모습들을 통틀어 '거버넌스'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듯했다. '거버넌스'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기업도 공무원도 담장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문제나 사안에 대해서 어찌 되었건 같이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고 의견을 들어 보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한 활동들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제는 실종된 언어가 되고 말았고 언어가 실종되면서 그나마 미미하게 진행되었던 쌍방향 교류에서 한 방향 통보로 돌아서고 있다. 특히나 행정 조직은 정부의 정책 마인드나 방향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라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예산과 정책 등 많은 부분이 예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자치를 말하기는 힘들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구에서도 '민관 협력 사업'에 대한 노력이 꾸준히 있어왔고 성과를 거둔 사례들도 많이 있어왔다. 그 중에서도 '담장 허물기 사업'은 대구의 대표적인 사업으로서 타 시도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업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담장 허물기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이 극대화되고 지역을 대표하는 사업이 된 것에 대한 배경을 보면 아마도 '거버넌스'의 힘이 아닌가 싶다.

행정이 시민사회를 신뢰하고 시민사회 또한 행정의 힘을 믿고 뒷받침해 주면서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권한을 나누어서 같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일을 도모하는 데 권한을 나눈다는 것은 무엇보다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신뢰 또한 사람이 주는 것이다. 신뢰를 쌓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번 쌓인 신뢰 속에서는 다른 의견도 서로 조정할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기게 된다. 지금의 정부나 행정의 모습을 보면 권한의 분배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은 우리의 권한을 대신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의견이 무엇인지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언어의 '유행'과 '실종'이 반복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에 국민들은 피로감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외면하고 마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공정옥(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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