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층서 생활 정신지체 장애 딸 "우리 엄마는…"

포항 노인요양원 참사 안타까운 사연들

12일 오후 포항 제철동사무소에서 열린 화재참사 유가족대책회의장에서 인덕노인요양센터 원장 부인이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2일 오후 포항 제철동사무소에서 열린 화재참사 유가족대책회의장에서 인덕노인요양센터 원장 부인이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2일 오전 9시 포항의 한 병원 앞에서 만난 김성대(54) 씨는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어머니 장후불(73) 씨가 11일 포항의 한 요양원을 할퀴고 간 화마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김 씨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서울에서 하던 일을 관두고 포항으로 내려올 만큼 효자였다. 2남 2녀 중 장남인 김 씨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또 장 할머니의 유가족 중에는 부고를 듣고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속앓이만 하고 있었다. 멕시코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 성은(43) 씨는 이날 새벽 전화로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당장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이틀 뒤에나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장남 성대 씨의 아들 두 명도 인도에서 지내고 있어 할머니의 발인을 지켜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오전 8시 포항의 또 다른 병원 응급실에는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울부짖는 사람이 있었다.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던 김순림(55·여) 씨는 "엄마, 우리 엄마"를 계속 부르며 응급실에 누워있는 환자들 주변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했던 순림 씨. 2층에 있었던 그는 다행히 목숨을 구했지만 80대 노모가 보이지 않자 침대에 눕지 않고 어머니를 계속 찾았다. 조영선(54·여) 씨는 "우리 어머니와 한방을 쓰고 있어서 요양원에 갈 때마다 순림 씨를 종종 만나곤 했다"며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지만 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고 다니더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순림 씨의 어머니 김차녀 씨의 이름은 이날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에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얼마 전 요양원을 나갔지만 같은 방을 쓰지 않았던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어머니를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구출됐지만 불이 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부상자도 있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김위천(91) 할머니 병상 주변을 에워싼 아들 딸들은 어머니가 생존자 명단에 올라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할머니는 이곳이 요양원인 줄 알고 있었다. 아들 김춘만(70) 씨는 "아침에 뉴스를 보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는데 우리 어머니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며 "어머니가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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