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30)] 뿌리산업부터 키우자

우리 국민들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어떤 기업인가? 삼성전자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첨단 IT소프트웨어회사가 아니다. 삼성은 IT기술을 활용하여 반도체'휴대폰 등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이다.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비결은 무엇보다도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는 탁월한 기업경영 능력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손놀림(공정)기술도 크게 뒷받침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NT(나노기술) 등 첨단기술의 신산업이 등장하면서, 우리 정부는 조선'철강'자동차'기계 등 기존의 장치형 주력산업보다는 신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1997년의 IMF외환위기,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한국경제를 살린 것은 신산업이 아니라 이들 주력산업들이었다. 국민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위기극복에 필요한 달러를 벌어 주었던 것이다. 2009년의 자동차'조선'철강'기계'전자산업과 같은 주력제조업의 수출액은 2천361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64.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맨 위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두산중공업'POSCO와 같은 대한민국 대표기업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양질의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해주는 중소기업들이 자리매김하고 있고, 맨 밑바닥에 부품소재의 성능을 책임지는 금형'주조'열처리 등 기초공정의 뿌리기업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뿌리산업은 1960-70년대 산업화시절에 육성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산업으로 간주되어 젊은이들이 취업을 기피하고 있고, 요즈음은 저임금의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전혀 없었던 광주는 광(光)산업 육성을 위하여 1994년 GIST(광주과기원)를 설립하고 기초연구와 인재양성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2001년에는 광산업지원조례를 제정하여 광산업 분야 부품기업 육성의 기초가 되는 '금형'이라는 생산기반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광주지역에 금형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하여 2003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광주분원을 설립하였고, 2005년에는 금형의 시험생산기능을 하는 광주 트라이아웃(Tryout)센터를 설립하였다. 지난해 광주는 금형에 있어서 8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였고, 2012년에는 1조5천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광주는 '광'(光)이라는 미래첨단산업의 메카를 구축하기 위하여, GIST를 통한 인재양성 그리고 금형이라는 뿌리산업육성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것이다.

MB정부는 지난 5월 제조업의 근원인 주조'금형'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6대 뿌리산업을 '디지털화하고' '역동적이고' '품위 있는' 신 3D(Digital'Dynamic'Decent)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대책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10월 19일에 경기'중부권, 부산'경남권, 대구'경북권, 광주'호남권 등 4개 권역별로 '뿌리기업 IT융합 지원단' 발대식을 가졌다. 20년이란 세월을 허송한 때늦은 정부정책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21세기 동북아의 부품소재산업 기지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이 세계 최고 제조업 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뿌리산업과 이에 종사하는 기능인력을 우대한 흔들리지 않은 정부정책 덕분인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던 대구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섬유산업이 쇠락하고, 지금은 자동차'전자의 부품기업들이 주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대구에 이러한 제조업체들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뿌리산업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기업의 63%가 뿌리산업 관련기업이란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오늘날 대구시의 산업정책은 첨단의료나 로봇과 같은 신산업육성과 중견 스타기업지원으로 요약될 수 있다. 뿌리산업에서 출발한 광주의 산업정책이 bottom-up식이라면, 대구는 top-down식으로 대조적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대구의 산업정책을 Two-Way전략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 첨단의료와 같은 신산업육성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초R&D(연구개발)의 기반확립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 한편 대구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은 부품산업의 첨단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정부의 뿌리산업 신3D정책에 대구시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뿌리산업의 튼튼한 기반 위에 부품소재산업의 첨단화가 가능할 것이고, 신산업의 기반도 다져질 것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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