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마트 피자 논쟁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논쟁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논쟁의 발단은 9월 중순 트위터 상에서 중소 피자 가게를 몰락시키는 이마트의 즉석 피자 판매를 중단하라는 네티즌의 요구에 대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소비를 이념으로 하나?"라고 대응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차라리 정 부회장이 어감은 좋지 않지만 "돈벌이를 이념으로 하느냐?"라고 했더라면 논란이 덜했을는지 모른다. 그는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상품을 손쉽고 싸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통업의 사명"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상 이마트에서 피자를 판매하는 이유는 이마트 또는 이마트와 특수관계에 있는 피자 공급 업체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이고 싸게 파는 이유는 시장 진입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 부회장이 경멸적으로 사용한 '이념적 소비'라는 용어는 '소비자의 효용을 희생하는 소비'라는 의미인데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나타났다. '간디의 물레'로 표현되는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치하 인도의 국산품애용운동, 즉 스와데시가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조만식 선생에 의해 주도된 물산장려운동이 이념적 소비의 사례에 해당한다. 지난 1960, 70년대 산업화 초기 우리 정부에 의해 주도된 국산품장려운동 또한 이념적 소비 운동이다.
인도의 스와데시, 우리나라의 물산장려운동 및 국산품장려운동은 모두 자국의 생산자를 지키기 위해 소비자에게 소비 효용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국 생산자의 제품을 사자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이 대중의 반향을 얻은 이유는 애국심이라는 추상적 동기도 있지만 생산자로서의 자기의 이익을 지키려는 경제적 동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념적 소비 운동은 성공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코앞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적인 운동일 뿐 아니라 다수 대중의 참여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은 경제적 운동 그 자체보다는 나라의 정치적 독립 또는 어떤 제도의 법제화 등과 같은 정치적인 성취에 의해 그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장경제 하에서 이념적 소비가 무조건 불합리한 것일까?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얼핏 정 부회장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만사는 다 조건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경제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경제활동이든 가급적 규제하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경쟁 체제가 유지될 때 작동한다. 자본의 집중이 이루어져 시장의 한쪽에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 즉 우리나라의 재벌 그룹 같은 것이 존재하면 경쟁 체제는 유지될 수가 없다. 이런 경우 시장의 절대 강자를 통제하는 각종 제도와 법규가 있어야만 시장 내에 경쟁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이념적 소비의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면 단연 재벌 기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전기'전자, IT 산업 등이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우리 국민들의 남다른 국산품 애용 의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리고 아직도 상당 부분 현재 진행형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희생과 성원에 힘입어 성장한 재벌 기업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자금력과 지위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서 중소기업들 또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영역마저 모두 싹쓸이해 버린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의제 중 하나로 채택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중소기업 또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급격한 몰락은 실업률의 증가와 빈부 격차의 심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결국은 사회적 유효 수요의 저하를 가져와 재벌 기업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승도(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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