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낙엽과 이끼 낀 돌 담장은 가을의 정취를 더하고 고적감을 부추긴다. 특히 고가(古家)와 감나무,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담장 길은 '사색의 길'이며, 고향의 추억을 되살리는 '향수(鄕愁)의 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6년 영'호남 지역 10개 마을의 옛 담장 길을 대상으로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옛 담장이 시나브로 사라져 시급히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0개 마을의 옛 담장은 장인(匠人)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직접 쌓고 다듬은 문화유산이다. 대부분 자연석을 사용한 돌담이거나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담이다. 짧게는 700m에서 길게는 10㎞에 이르는 이 담장들은 얼핏 아무렇게나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기능면에서 전통 돌담과 토석담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을 나누면서도 담장이 낮아 이웃끼리 소통하는 정서적 공간이 된다고 한다.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 10개 마을은 대구 동구의 옻골마을,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 등 지역의 3곳을 비롯해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동마을,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 산청군 신등면 단계마을,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지전마을, 전북 익산의 함라마을, 전남 담양의 삼지천마을, 강진의 병영마을 등이다.
문화재청이 등록을 예고한 10곳 중 대구 옻골마을과 성주 한개마을 등 9곳의 담장은 등록문화재가 됐으나 군위 한밤마을의 돌담길은 주민들이 투표 끝에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부 지원을 받을 경우 생활과 지역 개발에 불편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한 때문이다. 2005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한밤마을을 다녀간 뒤 전통 담장에 대한 문화재 등록사업을 추진한 터에 정작 한밤마을이 제외된 것은 아이러니다.
군위 한밤마을 돌담 길은 수백 년의 풍파를 견뎌낸 돌들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모두 자연석으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성주 한개마을의 토석담도 낮게 혹은 높게 쌓아 올려 뛰어난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 대구 옻골마을의 담장은 구불구불한 다른 전통 마을의 담장과는 달리 직선으로 구획된 특이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도 좋지만 지척에 있는 옛 담장 길부터 걸어볼 것을 권한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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