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빠듯이 세상에 밀려나온 나는 또 한번 나를 내 몸으로 세상 밖 저쪽으로 그렇게 밀어내고 싶다 그렇게 나가서 저 언덕을 아득히 걸어가는 키 큰 내 뒷모습을 보고 싶다 어머니가 그러셨듯 손 속에서 손을, 팔다리 속에서 팔다리를, 몸통 속에서 몸통을, 머리털 속에서는 머리털까지 빠뜨리지 않고 하나하나 빼곡하게 꺼내어서 그리로 보내고 싶다 온전한 껍질이고 싶다 준비 중이다 확인 중이다 나의 구멍은 어디인가 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쉽지 않구나 어디인가 빠듯한 틈이여! 내 껍질이 이다음 강원도 정선 어디쯤서 낡은 빨래로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보인다 햇살 쨍쨍한 날 보송보송 잘 말라주기를 바란다 흔한 매미껍질 같이는 싫다 그건 너무 낡은 슬픔이지 않느냐
껍질이란 대개 매미껍질처럼 알맹이인 몸통을 내보내고 수분이 말라버린 상태로 남겨진다. "그건 너무 낡은 슬픔"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세상 밖 저쪽"으로 전 존재를 '밀어내고' 싶어한다. 마치 우리가 "어머니로부터 빠듯이 세상에 밀려나온" 것처럼 전폭적으로 말이다.
'세상 밖 저쪽'이란 피안이자 내세(來世), 혹은 초월적 상태인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게다. 시인은 '껍질'이라는 육체성을 지닌 현존 그대로, 그러니까 "온전한 껍질"인 감각과 인식의 주체인 채로 오롯이, "하나하나 빼곡하게 꺼내어서 그리로 보내고" 싶어한다. 그 열망은 가령, "내 껍질이 이다음 강원도 정선 어디쯤서 낡은 빨래로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보인다"라고, 마침내 시공을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내 껍질'이란, 기껏 또다시 '낡은 빨래' 정도일 것이란 걸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껍질'이여, 부디 "햇살 쨍쨍한 날 보송보송 잘 말라주기를" 다만 바라고 바란다. 흔한 매미껍질 같이는 말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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