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로 사랑하며 순리대로 살면 채워지죠"

단상집 '빈 그릇'펴낸 들꽃마을 최영배 신부

▲단상집
▲단상집 '빈 그릇'을 펴낸 들꽃마을 창설자 최영배 신부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90년 경북 고령의 한 시내버스 정류장. 누워있는 노인이 신음하고 있었다. 딱 봐도 노숙자처럼 보인 그는 배에 복수가 차 있었고 발가락도 문드러져 있었다.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할 수 없이 그 노인을 고령성당 사제관에서 지내게 했다. 열흘 뒤 그 노인은 기적처럼 회복했다. '지금껏 사랑에 무척 굶주렸구나. 사랑이 병을 낫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영배(55) 신부는 '들꽃마을'(사회복지법인) 창설자로 20년 넘게 들꽃마을을 지키고 있다.

최 신부는 최근 단상집 '빈 그릇'을 펴냈다. 첫 단상집 '들꽃처럼 살으리라' 이후 8년 만이다. 1만5천여 명에 이르는 들꽃마을 후원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던 최 신부의 기도 70편을 엮은 책이다. "정말 힘들고 외롭다고 느낄 때 책장에서 꺼내 볼 수 있는 책이죠. 책을 읽고 가슴이 뭉클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 책은 제목처럼 삶이란 순리대로 살면서 서로 사랑하면 채워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빈 그릇에 사랑을 차곡차곡 담듯이 최 신부에게는 들꽃마을에서의 생활이 가득 채워져 있다. 부양 가족이 있지만 외면당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었다. "지금은 들꽃마을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지만 초창기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시골 어디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면 그곳 주민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시위를 하고 방해를 했죠. 주민들이 수도관을 끊어버려 밥할 물이 없어 우유와 빵으로 때우는 날도 숱하게 많았죠."

그러는 사이 들꽃마을이 방송을 잇달아 탔고 그곳에 머무르기 위해 찾는 사람도 점차 늘었다. 노인이나 정신지체 아이를 버리고 가는 이들도 생겨났다. 부양자가 있는데도 부양을 못 받으니까 안타깝기만 했다. "같이 지내보면 모두 괜찮은 사람들인데 왜 버림을 받을까 의문이 많이 들고 속상하죠. 끈끈할 것 같은 가족관계도 돈이 없고 병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더라고요." 부양자가 있다 보니 정부 지원이 안 돼 최 신부는 책을 팔거나 강의를 해서 들꽃마을을 운영했다. 그렇게 지금의 고령들꽃마을을 정착시켰고 6년 전에는 포항으로 옮겨와 포항들꽃마을 원장으로 지내고 있다.

20년 넘게 들꽃마을을 지키면서 감동을 준 이들도 적잖다. "유치원 교사 생활을 하다 병원에서 주사를 잘못 맞고 전신마비가 온 젊은 여성이 있었어요. 집안 사정도 좋지 않고 가족들 모두 지쳐서 그녀를 버리다시피 이곳에 데리고 왔죠. 처음에는 가족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강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이 점차 맑아지더라고요. 하루는 자신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묻기에 기도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더니 누워있으면서도 벽을 보면서 남을 위해 기도를 하더라고요. 정말 뭉클했어요." 청소부 아줌마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이 안 좋은데도 자신이 번 돈 300만원을 고스란히 들고 이곳을 찾은 일도 최 신부의 뇌리에 뚜렷하다.

최 신부는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회가 너무 경쟁 체제에 빠지다 보니 인간관계마저도 경제적인 영향이 지배를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 가슴이 너무 말라버리고 관계 또한 소통이 안 됩니다. 우주의 이치가 결국 사랑인데 그런 사랑이 사라지다 보니 사회가 마비된 듯합니다."

최 신부는 앞으로도 포항들꽃마을을 지킨다. 소나무로 가득한 뒤뜰에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집을 마련할 생각이다. 또 단상집 3집을 내고 향후 어른 동화나 수필을 쓰는 것도 꿈꾸고 있다. "저는 이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게 행복합니다."

글'사진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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