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은 건국 이래 최대의 복지 확대기라 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복지지출 증가율만 보더라도 9.8%로 총지출 증가율 6.8%를 크게 상회할 정도다. 이러한 증가율(9.8%)은 OECD 평균 증가율(4.9%)의 2배로서 멕시코(14.3%)와 아일랜드(13.3%)를 제외하면 가장 높다. 복지 지출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24.2%에서 2010년 27.4%로 5년 만에 3.2%포인트 커졌다.
그런데 문제는 복지를 이렇게 확대했는데도 성과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빈곤 문제만을 놓고 보더라도 정책의 효과가 너무나도 저조하다. 각종 복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의 비율이 1999년 14.3%에서 2007년 20.3%로 커지고 있을 정도이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새로운 빈곤대책이 도입되었음에도 큰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복지 정책은 조세정책과 함께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핵심 정책수단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정책 효과가 상당히 저조한 실정이다. 정책에 의해 지니계수가 감소하는 폭을 기준으로 본 분배개선 효과는 0.03%로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OECD 평균(0.14%)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왜 이처럼 빈곤대책으로서, 그리고 재분배정책으로서 복지 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첫째 원인은 부처 간 울타리가 높다는 데 있다. 부처별로 서로 경쟁적으로 중복적인 정책을 만들어내고 확대하는 과정에서 공급자 위주의 복지 정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빈곤 대책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한 급여 이외에 9개 부처에서 27개 복지급여가 지급되고 있을 정도이다. 최저생계비에 미달되어 한번 기초생활보장대상자로 선정되면 모든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지만 1원이라도 더 벌게 되면 이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2006년 실시한 차상위계층 실태 조사에 의하면 기초수급자의 월평균 소득은 77만원인 반면 차상위 계층 월평균소득이 61만원으로서 이른바 소득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복지 정책 실효성이 낮은 둘째 원인은 사각지대가 너무나 넓다는 데 있다. 특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4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30% 정도가 단 하나의 사회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사회보험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직업훈련의 기회마저 없으며 아파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나아가 노후에 연금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각지대의 국민들에 대한 파악이 없이는 그 어떤 새로운 제도와 예산의 확대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4대 사회보험 사각지대 파악과 관련해서 지난해 발족한 건강보험공단 내 사회보험 통합징수공단이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징수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4가지 사회보험 징수 정보의 연계를 통해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이를 부과와 급여업무에 연결할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
복지 실효성이 낮은 셋째 원인은 복지전달체계의 비효율성에 있다. 각종 복지 정책과 프로그램들이 행정체계를 통해 복지 수요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앞다투어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내려보내지만 일선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과 재정 여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깔때기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자체의 복지전담 공무원들의 업무량이 많아서 해당 지역에서 누락되어 있는 복지 대상자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기가 애당초 힘들 정도다.
앞으로 복지 지출은 더 늘 수밖에 없다. 향후 저출산'고령화 등 복지 수요의 급증을 감안하면 복지지출 수준의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이 세 가지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복지 확대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실효성을 높이는 작업은 부처 간 울타리를 허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부처별로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짜서 내려보내는 식의 복지가 아니라 복지 수요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기초로 부처 간 역할 분담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 간 역할분담과 조율을 하도록 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처 간 울타리를 허물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복지 수요자를 기초로 현행 제도들의 실효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다. 도입한 지 10년이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의약분업 등에 대한 평가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안종범(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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