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지성의 오지를 달리다] 트레일 레이스와 달리기 예찬

기록보다는 최선의 행복감, 빨리 달리든 천천히 달리든 상관 없어요

◆트레일 레이스

사막, 정글, 남극, 북극 등 이제는 인간의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세상에는 진정한 개념의 오지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오지라고 해서 가보고 책으로 남긴 곳들도 실상은 관광코스로 개발된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고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통칭해서 오지라고 불리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면 '오지 레이스는 뭐야?'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오지 레이스에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숨어 있는 특별한 하나가 있다.

오지 레이스는 정부의 승인을 받고 열리는 행사이다 보니 코스를 오지 중에서도 더 깊은 오지에 만들어 대회를 개최한다. 정말로 일반 관광객들의 흔적이 없고 심지어 현지인도 살지 않는 출입금지지역인 진정한 오지를 달리는 맛이란 일반적인 오지여행과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오지 레이스는 달리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최후의 성지 같은 곳이며 일반인에게는 꿈 같은 상상의 공간이다.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사하라 사막을 달리며 남극의 눈밭을 뛰어다니는 발칙한 상상만으로도 무언의 카타르시스와 낭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오지 레이스와 더불어 외국에서 급격히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가 있다. 바로 트레일 레이스인데, 워낙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에 이번에 잠깐 소개를 하려 한다.

오지 레이스는 아무래도 비용과 시간적인 이유로 인해 상당히 제한된 인원이 참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레일 레이스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며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에서 개최되다 보니 많은 참가자들이 몰린다. 참고적으로 사하라 레이스에 한번 참가하려면 500만원 이상의 경비가 필요하지만 트레일 레이스에 참가하면 외국 대회도 지역에 따라 100만~2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그러면 트레일 레이스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하겠다.

대자연 속의 산이나 트레일(등산 길, 산 길, 초원 등) 지역을 달리는 것을 보통 트레일 러닝이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트레일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들을 트레일 레이스 혹은 트레일 런 대회라 칭하고 있다.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트레일 레이스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대회가 많이 열리는 곳은 본고장 미국과 유럽이며 아시아에선 일본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그들 나라는 대회 코스 개발이 용이한 2,000m 이상의 고산들이 많고,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마라톤 인구와 문화가 있다 보니 다양한 코스의 개발과 참여자가 많은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트레일 레이스 전문선수도 탄생할 정도로 시장이 커가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참가 인원도 수백 명은 기본이며 유럽의 경우 수천 명 이상 참가하는 대회도 여럿 있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2천 명 이상 참가하는 대회가 있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다.

국내의 경우 마라톤, 조깅 인구만 4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중 마라톤 마니아는 대략 10만 명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은 한 달에 보통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을 달리기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 대회에 참가하는 인원은 1년에 2천 명을 넘어섰으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한국에도 트레일 레이스가 상당한 인기를 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지형적으로 산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2,000m 이상의 고산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지형을 잘만 활용하면 재미난 코스 개발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코스 개발자의 능력과 철학이다. 세상의 많은 대회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코스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코스 설계의 가장 기본은 열림과 닫힘이다. 그 기본 원칙에 충실하여 코스를 만든다면 대한민국에서도 번듯한 대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운 산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트레일 러닝, 레이스는 새로운 시장을 이끌어 갈 차세대 원동력이라 생각된다.

◆달리기 예찬과 현실

달리기를 하면서 항상 부닥치는 현실이 있다. 달리기는 기록 경기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선두는 후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후미는 선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물론 그건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라톤 선진국들은 분명 현재 변하고 있다. 기록을 중시 여기는 사람은 그 방식대로,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또 그 방식대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기록에 집착해서 죽으라고 달릴 수는 없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천천히 달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걸 가지고 빨리 달린다고, 늦게 달린다고 서로 욕한다면 그것처럼 비생산적인 싸움도 없을 것이다. 건강 때문일 수도 있고 자아만족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달리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또 달리는 방식에 차이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왜 대회에서 제한 시간을 두고 경기를 운영하겠는가. 상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건 모든 이에게 공평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서비스다.

비록 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이라도 자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우수한 사람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빨리 달리고 싶어도 선천적으로 빨리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 사람은 달리면 안 되나? 천천히 달리고 싶어도 광속의 스피드가 나는 사람도 있다. 그럼, 그 사람도 달리면 안 되나?

나는 세상에서 달리는 일이 가장 멋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달리기, 마라톤을 알리고 싶고 함께 달리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초보자에게 흥미와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건 기록을 뛰어넘어 즐거움, 즉 재미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빨리 달리건 천천히 달리건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먼저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 맛을 알기까지 끈기를 가지고 눈높이를 낮추는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사막에서 선두로도 뛰고 꼴찌로도 걸어봤다. 분명한 건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름의 인정, 그 모든 출발이 혼란스런 사회를 대신해 달리기로부터 시작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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