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핑의 세계(하)]-2011대구대회에서는

선수촌서 혈액 채취 분석 결과 통보 '초고속'

소변 시료 채취 용기와 혈액 시료 채취 용기.
선수들의 도핑과 이를 막기 위한 도핑 검사의 숨바꼭질이 갈수록 지능화·과학화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현장 혈액 분석 장치로 도핑시료 혈액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소변 시료 채취 용기와 혈액 시료 채취 용기.
선수들의 도핑과 이를 막기 위한 도핑 검사의 숨바꼭질이 갈수록 지능화·과학화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현장 혈액 분석 장치로 도핑시료 혈액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도핑 검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소변만 보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경기 후 땀을 많이 뺀 상태에서 적정량의 소변을 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또 검사라는 특성상 긴장해 소변 시료를 채취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땐 소변 외에도 도핑 분야의 최대 이슈인 혈액 도핑을 막기 위한 혈액 검사도 대대적으로 시행하는 등 최신 검사 프로그램이 도입될 예정이다.

◆도핑 검사 절차

검사 대상으로 선정된 선수는 통지서를 통해 선정 사실과 제공해야 할 시료(소변 또는 혈액)에 대해 도핑 검사관(DCO)이나 도핑 검사 동반인(샤프롱·Chaperone)의 설명을 듣고 통지 사실 확인을 위해 통지서에 서명해야 한다. 통지받은 선수는 곧바로 도핑 관리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2008년까지는 '통지 후 1시간 내'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지난해부터 '통지 후 즉시'로 규정이 강화됐다. 만약 후속 경기 출전이나 시상식 참가 등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미리 도핑검사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도핑 검사관 또는 샤프롱과 동행해 채취실로 들어가 90㎖(에리스로포이에텐 검사 대상 선수는 125㎖)이상의 소변을 시료 채취 용기(Vessel)에 담아 제공해야 한다. 시료 병의 뚜껑은 한 번 봉인되면 사람 손으로 절대 열 수 없고 시험실에서 기계로 열어 분석하게 된다. 도핑 검사관은 소변 시료가 분석하기 적합한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채취 용기에 남은 소변으로 비중 측정이라는 간단한 검사를 하는데 부적합할 경우엔 2차 시료를 제공해야 한다. 통지부터 소변이나 혈액 등을 제출할 때까지 검사관이나 샤프롱이 항상 동행하는데, 채취 부정을 막기 위해 소변은 물론 대변을 볼 때도 감시한다.

검사 소요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소변의 경우 10분 내에 소변 채취 및 도핑 관리 절차가 모두 끝나기도 하지만 기준 소변 시료량을 채우지 못해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 혈액의 경우 보통 15~20분 내에 이뤄진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는 보통 7~10일 정도 걸리는데 내년 대회에선 소변 검사의 경우 검사실 도착 후 24시간 내에 시료 분석 결과를 내는 등 초고속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2011 대회 때 처음 시도하는 최첨단 검사법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선수촌 내에 현장 혈액 분석실을 운영하며 현장에서 채취된 혈액 시료를 곧바로 운반해 분석,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현장 혈액 분석은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는데, 세계적으로도 몇몇 국가나 국제연맹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최신 분석 방법이다. 국내에선 지난 10월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일부 선수에 대해 시범 운영하기는 했지만 내년 대회 땐 전 선수를 대상으로 시도할 계획으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사상 처음이다.

특히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해당 연맹의 엘리트 선수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선수 생체 여권(Athlete Biological Passport) 프로그램을 내년 대구 대회 때 현장 혈액 분석과 연계 실시한다. 혈액 도핑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종 도핑으로, IAAF는 이를 발견하고 사전 차단하기 위해 2008년 선수 생체 여권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선수 생체 여권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선수의 혈액을 채취하여 생체 주기 등을 여권처럼 기록해 도핑 유무를 찾아내는 최신 도핑 검사 방법이다.

◆도핑 검사 에피소드

엄격한 도핑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각종 기발한 '속임수', 경기 후 수분 고갈이나 긴장 탓에 소변 시료 채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등 도핑 검사와 관련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적잖다. 실제 호스를 이용, 미리 받아 놓은 소변을 자신의 소변인 양 시료로 제출하려던 선수가 적발됐다. 2007년 한 대회에서 풍선 같은 기구에 미리 다른 사람의 소변을 담아 항문 속에 넣은 뒤 소변을 누는 척하며 연결된 호스로 받아 놓은 소변을 빼내다 샤프롱에게 들켜 들통나는 어처구니없는 소동이 벌어졌다. 또 지난해 한 대회에선 선수의 소변 채취 장면을 직접 관찰, 확인해야 하는 점을 악용해 게이 샤프롱이 사심을 갖고 쳐다보다 눈빛과 불필요한 접촉 등을 불쾌히 여긴 선수가 강력 항의한 경우도 있었다. 외국의 한 육상선수는 '경기기간 외 도핑 검사'를 피하기 위해 언니가 대신 도핑 검사를 받는 방법으로 도핑 사실을 숨겨오다 이를 수상히 여긴 세계반도핑기구와 국제육상경기연맹의 표적 추적에 걸려 DNA 검사 끝에 적발되기도 했다.

샤프롱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소변 시료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곤혹을 겪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한 마라톤대회에선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힘을 줘 대변까지 보는 곤욕을 겪은 선수도 있고, 전국소년체전에서 처음 도핑 검사에 임한 한 어린 선수는 소변 채취를 위해 경기 후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는 바람에 검사 후 돌아가는 길에 여러 차례 화장실에 가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도핑검사관 국내 1호인 박주희 검사관(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도핑지원팀)은 "지난해 한 대회에서 육상 종목은 아니지만 2주 동안 체중 감량 때문에 물도 안 마시고 15㎏을 뺀 탓에 도핑 검사서 소변이 안 나와 소변 시료 채취에 10시간이 걸린 경우도 있다"며 "시료를 변질시키기 위해 용기나 시료에 파우더 등 다른 성분을 의도적으로 묻혀 검사를 무효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표적 선수'가 돼 이후 집중 검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적발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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