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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동지 다음 날 /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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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밥은 굶지 않는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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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지 다음 날입니다. 어제 동지팥죽은 잘들 드셨는지요. 구제역의 확산으로 무고한 축생들이 떼로 생매장을 당해야 하는 횡액으로 뒤숭숭한 연말이지만, 역질과 액운을 물리치는 축귀(逐鬼)의 속설이 전해지는 붉은 팥죽의 기운으로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동지는 아세(亞歲)라 하여, 우리말로는 '작은 설'이라고도 했습니다. 밤이 가장 긴 이 날이 바로 '태양의 부활'이 시작되는 날이자 만물이 회생하기 시작하는 새 기운의 날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죽음과 삶이 교차하며 조응(照應)하는 '동지 다음 날'의 정서를 생활에 밀착한 구체적인 안부인사 어법으로 차분하면서도 울림 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픈 데 없고, 밥 굶지 않고, 아이들 잘 크면, 이 삶은 비록 유한하고 쓸쓸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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