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 사건 그 이후…] <1>대구 노곡동 침수사건

2차례 물난리 흔적 지웠졌지만…주민 가슴 생채기는 남아

7, 8월 두 차례 물난리를 겪은 대구 북구 노곡동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주민들은 물난리 때의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물난리의 주원인으로 지적된 제진기가 철제펜스에 둘러싸여 있다(위). 지난 8월 물난리 때의 노곡동 현장.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7, 8월 두 차례 물난리를 겪은 대구 북구 노곡동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주민들은 물난리 때의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물난리의 주원인으로 지적된 제진기가 철제펜스에 둘러싸여 있다(위). 지난 8월 물난리 때의 노곡동 현장.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 번 더 물난리가 나면 다들 나가겠다고 그래요. 민심도 흉흉해지고…."

올 7, 8월 두 차례나 물난리를 겪은 대구 북구 노곡동은 여느 동네와 다름없이 차분해 보였다. 외지 사람이라면 이곳이 물난리로 한바탕 난리를 치렀던 곳이라곤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듯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달랐다. 물난리 때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여름 발생한 노곡동 물난리는 후진적 방재시스템의 단면이었다. 이후 행정기관의 치수 방재 대책이 나왔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물난리 그 후 100일

물난리 후 100일이 지난 이달 20일, 노곡동을 다시 찾았다. 잠잠한 겉모습과 달리 주민들을 만나자 아직 가시지 않은 정신적 외상이 그대로 전해졌다. 분식점을 운영하다 물난리를 맞은 A(43·여)씨는 가게 안에 장롱과 가전도구를 들이지 않고 있었다.

분식점을 4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A씨의 가게 안 2칸 방에는 TV 1대와 옷가지 조금이 전부였다. 옷을 쌓아 놓았을뿐 장롱은 없었다. A씨는 "첫 침수 때 못쓰게 된 장롱을 대신해 바로 새것을 들였지만 곧바로 잠겨서 8일 만에 버렸다"며 "다시는 이곳에 장롱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겨울이었지만 방안에는 눅눅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그나마 겨울이라 덜하다는 게 A씨의 설명이었다.

노곡동 마을 초입에서 만난 할머니 3명은 물난리 이후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기 저거(제진기를 가리킴)를 누가 저래 시근없이 만들어놔 갖고 문제를 만들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물난리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던 제진기는 철제펜스에 둘러쳐져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물난리 이후 노곡동을 떠난 이들이 적잖다고 했다. 노인들만 남게 됐다고 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이유 삼아 다들 떠났다고 했다. 실제 두 차례 침수 이후 주민 67명이 이곳을 떠났다. 마을을 떠난 이들 중 상당수는 토박이였다. 물난리 이후 마을 중요 시설 중 하나인 어린이집도 이전될 예정이다.

◆여전히 불안한 주민들

노곡동은 7월 새벽 내린 비로 주택 60여 채 등 9천여㎡와 차량 110여 대가 침수됐고, 한 달 뒤에도 집중호우로 주택 60여 채와 주차된 차량 30여 대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수해방지를 위해 32억원을 들여 마을 입구 금호강변에 설치한 배수펌프 제진기(펌프에 유입되는 물에서 쓰레기 등 부유물을 거르는 장치)가 댐 역할을 하면서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을 가둔 탓이었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배수펌프 제진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했다. 공사비용이 큰 데다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제진기를 1대 더 설치하면서 부유물질을 거르는 스크린을 제거해 집중호우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또 폐쇄돼 있던 기존 지하 배수로를 열어 자연배수를 유도할 계획이다.

일부 주민 반대로 건설이 불투명했던 유수지도 예산 80여억원을 확보해 추진할 계획이다. 금호강으로 통하는 600여m 규모의 배수관로를 함께 설치해 빗물이 바로 금호강으로 흘러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김·이 씨 등 문중의 묘소가 수십기 단위로 유수지 조성 예정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은 "묘 1기 이장에 200만원 정도 준다던데 그걸로 어떻게 이장하느냐"며 정체불명의 정보로 혼란스러워했다. 또 다른 노인은 "벌써 관공서에서 말뚝을 박아놨더라. 자기들 마음대로 그렇게 선을 그어도 되느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한편 이번 물난리로 인해 공무원 5명과 공사관계자 3명 등 모두 8명이 경찰에 입건됐다. 과실로 수해를 일으켜 폐해를 초래했다는 혐의다. 특별감사에서는 관련 공무원 2명이 중징계, 5명은 경징계, 3명은 훈계 조치를 받았다. 반면 설계와 감리를 함께 맡은 업체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단순 경고 조치로 끝나 입찰제한 등 불이익은 없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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