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매일신문이 대구 경북을 통칭해 표기할 때 중간점을 넣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매일신문 국어사전'에는 대구와 경북 사이에 구두점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대구'경북' 또는 '대구, 경북'이 아니라 '대구경북'이다. 원래 한뿌리이고 운명 공동체이기에 그렇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폐단 중 하나로 지자체 간 중복 투자에 따른 효율성 부족이 꼽힌다. 지나친 경쟁의식이 빚어낸 씁쓸한 자화상이다. 취재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다른 지자체 칭찬하는 공무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대구경북이 보여준 '찰떡 공조'는 참으로 고무적이었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공개 석상에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며 서로를 배려하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구경북의 우애는 다른 지자체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샀고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구경북이 이처럼 공조 체제를 유지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대구는 경제 지표를 따질 때마다 20년 가까이 꼴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자식 키워봐야 취업시킬 데 없고 결혼 배우자감을 찾기 힘든 도시다. 경북 역시 지표는 나쁘지 않지만 구미와 포항 빼고 나면 대구와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구경북민들은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고 외견상 어느 정도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속은 없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지역 발전을 견인하고 밀어주는 필요조건으로서 대구경북 정치인들의 역할은 유감스러운 수준이었다.
차기 대권주자 1순위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워낙 '큰 꿈'을 꾸는 입장이다 보니 지역을 챙길 형편이 아니다. 대구경북이 밀양신공항을 그토록 염원하건만 부산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인지 힘 한 번 제대로 실어준 기억이 감감하다. 경북엔 이상득 의원이 있지만, '형님 예산' 등 공세에 밀려 운신의 폭이 좁다.
박근혜 전 대표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경북은 정치적 거물이 자랄 만한 토양이 척박하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국회의원 가운데 박 전 대표를 빼고 잠재적 대권후보 대접을 받는 인물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사정이 그렇다 보니 믿을 수 있는 구석은 대구경북 스스로이다. 그런 공감대 속에서 지난해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경쟁 때 대구경북은 찰떡 공조 속에 발 벗고 나서 결국 큰 결실을 이뤘다. 두 지자체가 이처럼 단합된 목소리를 낸 것은 전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구경북의 공조 전선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겉으로 양 단체 공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물밑으로는 갈등과 과다 경쟁의식이 감지되고 있다. 간부들은 공개 석상에서 상생과 양보를 외치지만 정작 부하 공무원들에겐 "왜 안 챙기느냐"며 호통을 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두 단체 간의 균열 조짐이 시작된 것은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이후인 것 같다. 함께 고생했는데 전리품을 대구시가 다 가져갔다며 경북도가 매우 섭섭해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대구시가 SK케미컬 유치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는데, 다른 지자체도 아닌 경북 안동이 가져가 버리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구미로 취수원을 옮기겠다면서도 대구시는 경북과 구미의 이해를 사전에 구하지 않았다. 십수 년 전 낙동강 오염 문제 때문에 부산의 반대에 밀려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대구가 광역단체 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해법을 전혀 학습하지 못한 것 같다. 얼마 전 경북도의회가 대구경북연구원 지원 예산 30억 원을 전액 삭감하고 경북연구원 설립 속내를 숨기지 않는 것도 공조 균열의 한 단면이다.
자문해 본다. 경북 없는 대구, 대구 없는 경북이 지금보다 잘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정부, 수도권, 지역 정치권 역량 이것저것 따져보아도 둘은 서로 기대야 한다. 앞으로 경북도청 이전을 대비해서라도 공조 체제는 지금보다 훨씬 공고해져야 한다. 해법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10년이 저물어 가는 마당에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께 감히 권해 본다. 두 분만의 조촐한 송년회 또는 신년회 자리 한번 마련해 보시라고. 만일 오해와 섭섭함이 있었다면 막걸리 잔에 실어 보내고 '소통의 초심'으로 돌아가시라고.
김해용(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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