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10년 넘게 탈북자들 돌과 온 박노경씨

"북한 이탈주민들이 남쪽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의 이웃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대구로 오는 탈북자들을 10년 넘게 가족처럼 돌보고 있는 박노경(53) 씨. 그는 남쪽 땅에 적응을 못한 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탈북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탈북자들의 실생활은 외롭기만 해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대화상대라곤 주변 탈북자들뿐이니까요."

그는 결연을 한 탈북자 가족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인생상담도 해주고 병원 치료비도 지원하고, 취업 자문도 한다. 자식이 결혼하면 비용도 보태준다. 또 설·추석 명절 때는 탈북자 가족을 방문, 생필품도 주고 격려한다.

"탈북 여성과 동거하는 40대의 한 탈북자가 있어요. 탈북한 지 8년쯤 됐는데 현재 백화점 주차요원으로 열심히 살아가죠. 동료들에게 점심도 사주고 때로는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평양 특식을 요리해 대접까지 합니다."

그는 자매결연한 이런 탈북자들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고 했다.

탈북자에게는 3개월간 교육을 받은 후 거주하기를 원하는 지역에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6개월간 1인당 40만원씩 생계비를 준다. 또 이들이 자격증 취득을 희망할 경우 무료로 교육훈련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취업. 대구 지역에는 탈북자가 520여 명 있지만 4대 보험을 들어주는 회사의 취업률은 고작 10% 이내고, 30% 정도는 식당 등 아르바이트로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탈북자들이 자격증을 취득해도 직장에 몇 개월도 붙어 있지 못해요.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이들이 자본주의 환경에 적응을 못하기 때문이죠. 이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작년 탈북자들과 팔공산 산행을 같이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우리의 문화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의아해 했다고 했다. 한 여성 탈북자가 하이힐을 신고 산행하러 왔다는 것. 하이힐을 신고 어떻게 산에 오르냐고 물었더니 소나무 껍질과 풀뿌리를 캐 먹으며 산을 누볐기 때문에 하이힐을 신고도 산을 잘 탈 수 있다고 자랑하더라는 것.

"탈북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안보 불감증이 심각하다고 해요. 북한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거죠." 그는 탈북자한테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안보의식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며 씁쓸해 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탈북자는 2만 명이 넘는다. 그는 탈북자가 1만 명이 되기까지 59년이나 걸렸지만 이후 1만 명 시대는 불과 3년 만에 이뤄졌다고 했다. 탈북자가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 그는 앞으로 4, 5년이면 전체 탈북자가 10만~20만 명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그는 우리도 대규모 탈북사태에 철저한 대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통일비용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탈북자가 많이 발생할 경우 우리사회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또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 온전히 정착 못하면 사회적 위험군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남한 땅에서 탈북자들의 조기정착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공공기관 등 취업을 알선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또 탈북자들의 의료·취업·복지 등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탈북자 보호단체가 많아져야 해요."

대구지역 탈북자들 중에 결혼한 사람은 30% 정도. 나머지는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거하는 상태다. 동거도 주로 탈북자끼리나 탈북 과정에서 만난 중국 조선족이다. 그는 앞으로 동거부부 탈북자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결혼식을 올려주는 일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또 탈북자 가족 자녀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장학기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했다.

현재 대구지방경찰청 및 중부경찰서 보안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보안협력위원들이 탈북자 가족을 돕는 데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건축 도장, 방수, 미장재를 취급하는 ㈜중앙테라코를 운영하면서 10여 년째 국제라이온스협회 회원 활동과 국민생활체육 대구시검도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