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넷!" 제기가 공중에 뜰 때마다 숫자를 세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헛발질과 함께 제기가 땅에 떨어지자 아쉬운 탄성과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제기를 잘 찬 덕분에 비누나 쌀, 생필품 등 상품을 받은 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들은 베트남, 중국, 스리랑카 등 아시아 각국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 고향은 각자 달랐지만 풍요로운 설 명절을 지내는 즐거움은 같았다. 한국에서 5번째 설을 맞는다는 정하옌(30·여) 씨는 "자녀가 빨리 커서 오늘 배운 윷놀이, 제기차기 등 한국의 전통놀이를 함께 해보고 싶다"고 했다.
설날인 3일 오후 대구 달서구 진천동 대구평화교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흥겨운 잔치가 마련됐다. 전통놀이 체험장 곁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30여 명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외치며 어색한 몸짓으로 절을 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한국에 온 지 6년 됐다는 중국인 빌길군(40) 씨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의 건강을 빌며 세배를 했다"며 "중국에서도 명절을 보내고 있을 텐데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배가 끝나자 커다란 탁자에 각국의 전통 음식이 차려졌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음식인 쌀국수 '퍼'와 설에 먹는다는 찹쌀떡 '반쯩', 바나나 잎에 싼 돼지고기 요리인 '로우' 등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음식을 직접 만든 댜오(29·여) 씨는 "오랜만에 고국의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쁘다"며 "직접 부모님께 음식을 해드릴 순 없지만 여기 모인 이들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만들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날 행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맛있는 음식들이 끊이지 않았고, 흥에 겨운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국의 전통노래나 '칠갑산' '쓰리랑' 등 한국 가요를 부르며 명절 기분을 냈다.
그러나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면서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진 못했다. 베트남인 누엔(34·여) 씨는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경제적 문제 때문에 베트남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벌써 5년째 아이를 못 만나고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이면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난다"고 아쉬워했다. 대구평화교회 고경수(51) 목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명절은 힘든 날이기에 이 행사를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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