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패륜

설에 토·일요일이 붙어 닷새나 되는 긴 연휴를 보냈다. 그렇게도 춥더니 연휴는 포근해서 다행이었고, 연휴 중 입춘이 있어 이제 그 춥던 겨울도 물러가겠다 싶었는데 지구촌은 뒤숭숭했다. 우리나라에선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소말리아 해적과 관련된 뉴스들이 혼란스러웠고, 이집트에선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일본에선 화산이 폭발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 간부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뉴스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의정부 한 경찰지구대 안에서 40대 아들이 76세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뉴스가 또 흘러나왔다. 충격적이다. 누구에게나 충격적이겠지만 나같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을 수 없다. 연휴 내내 우울했다.

그것도 고향을 떠나 있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아가는 설 전날 이런 일이 생겼으니 더욱 가슴 아프다. 지구대에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람은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이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온전한 정신으로 어머니를 살해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정신병이어야 한다. 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제 어머니를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열한 살이었을 때 떠나셨다. 아버지는 첫돌이 되기 전에 떠나셨고, 그래서 나는 어머니 사진 한 장 간직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향의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분의 유품 정리를 돕다가 앨범 속에서 우리 어머니 사진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아가시고 20년이 더 된 시점이었다. 혹시나 더 있을까 봐 그 앨범을 보고 또 보았지만 더는 없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다. 그 일을 '빛바랜 사진'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쓰면서 그 끝에 "내 어머니가 젊어서 서럽다"고 썼다. 정말 그랬다. 사진이라도 늙어 있었으면 설움이 덜할 것 같았다. 가서는 오지 않을 길 너무 빨리 가신 것이다.

세상 사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색깔 다른 슬픔들을 간직하고 살 테지만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다 같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돈 때문에, 또 그 무엇 때문에 자식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패륜이 자주 일어나는 세상이 안타까워 죽겠다.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해 아니 앞으로 영원히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사건이 패륜의 마지막이어야 한다.

다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본다.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의 사진은 빛이 바랬다. 그래, 그런가 보다. 우리 어머니, 저승에서 나이를 먹나 보다.

<손경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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