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중반 대구와 부산은 '위천공단'을 두고 지루한 싸움을 했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공단을 유치해야 한다는 대구의 주장과 안전한 식수 확보를 위해 낙동강에 더 이상의 공단은 안 된다는 부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YS와 DJ, 두 대통령의 임기 동안 '위천'은 항상 긴박한 현안이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지역감정이 깔린 현안에 대해 한쪽 지역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다.
IMF를 겪고 시간이 지나면서 '위천'은 점차 잊혀져 갔다. 지방 분권을 국정과제로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동안도 '위천공단'은 잊힌 존재였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달성군에 200여만 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됐다.
10여 년 동안의 해묵은 꿈을 이뤘지만 대구의 '감격'은 그리 뜨겁지 않은 것 같다. 사업주체인 LH공사의 자금난으로 공단 규모가 반쪽이 될 위기에 처해 있고 무엇보다 대구가 '위천'을 외칠 동안 국내 산업구조가 변했다.
서해안 등 다른 지역에 공단이 잇따라 들어섰고 대규모 설비를 필요로 하는 장치산업에 대해 대기업들은 국내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현 정권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들고 나온 점이다. 물론 연구기능으로 제한된다고 하지만 수도권에 첨단 업종이 들어서면 추풍령을 넘어야 하는 대구 국가산업단지에 올 기업은 더욱 찾기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몇 년 뒤 달성군에 멋들어진 산업단지가 준공되더라도 자칫 '불 꺼진 공단'이 될 수도 있다는 앞선 우려다.
지나간 위천 문제를 꺼낸 것은 행여 '동남권 신국제공항'이 위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2009년 12월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선정키로 했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3개월을 연기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까지 발표키로 했던 입지 선정을 또다시 올 3월로 미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덕도를 외치는 부산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이에 대응하는 영남권 다른 지자체의 반응 수위도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동남권 신공항 선정이 대구와 부산의 '갈등'으로 지연되는 꼴이 돼 버렸다.
"부산보다는 서울에 있는 중앙 관료들의 시각이 더욱 문제입니다. 그들에게는 서울밖에 없잖아요. 시골(?)에 공항을 만들자는 주장에 쉽게 동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이 연기될 때마다 2009년 겨울, 고위 관료 출신 정치인이 했던 말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지난해 한국을 드나든 출입국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4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중 내국인은 2천558만 명으로 2009년보다 30.6% 증가했고 외국인은 1천740만 명으로 11.4% 증가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국가가 된 셈이다.
하지만, 21C 같은 한국에 살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현실은 '글로벌'이 먼나라 이야기다.
4천만 명의 출입국자 중 3천9만 명이 인천 공항을 이용했다. 삼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어 항구가 많고 좌우 근거리에 중국과 일본이 있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를 감안한다면 하나의 '거점 공항'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눈을 돌려 일본을 보자. 인천 공항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일본 도시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2월 현재 무려 27개에 이른다. 도쿄나 후쿠오카, 오사카, 홋카이도는 물론 도야마, 오이타, 니가타, 아오모리 등 중소 도시로까지 직항편이 연결돼 있다. 인천에서 갈 수 있는 중국 도시는 30개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인들이 직항으로 올 수 있는 한국 도시는 고작 3, 4개다. 특히 도쿄나 베이징이 아닌 지방 도시에 거주한다면 인천 공항만을 이용할 확률이 대부분일 것이다.
'글로벌'이 곧 국가나 도시의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동남권 신공항은 1천300만 영남권 주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밑거름이다. 또다시 '위천 공단의 전철'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재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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