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똑딱."
2.7g짜리 탁구공이 탁구대에 튕기며 내는 소리는 참으로 경쾌하다. 느렸다, 빨랐다 하는 리듬엔 규칙이 없다. 탁구공이 내는 소리는 나른한 오후 낮잠을 깨우는 알람소리 같기도 하고,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기에 짜릿함이 배인 환호와 아쉬운 탄식이 보태지면 기막힌 클래식 한곡이 완성된다. 이상동(58)·이영혜(50) 씨 부부는 만 10년째 하루의 시작을 탁구가 빚어내는 음악을 들으며 열고 있다. 탁구가 너무 좋아 탁구장을 차린 부부. 그들에게 탁구는 반환점을 돈 나머지 인생을 채워줄 청량제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 북리. 제법 큰 건물의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이 씨 부부의 탁구장을 찾았다. 529㎡(160평)의 널따란 공간에 탁구대 20여 개가 마련돼 있다.
이상동 씨는 "대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큰 탁구장"이라고 했다. 여느 탁구장처럼 레슨과 대여를 하지만 이곳은 달성군 생활체육회 회원들의 연습공간으로, 때로는 시합장소로도 쓰인다.
대구시내 중앙지하상가의 가게를 처분하고 2002년 달성군 논공읍에 호프집을 열어 돈을 벌었던 이 씨 부부는 2009년 호프집을 정리했다. 2007년 9월 탁구장을 차린 뒤 2년간 호프집과 탁구장을 왔다 갔다 했던 부부는 투 잡스의 피곤한 일상을 멈추고 싶었다. 돈벌이는 호프집이 나았지만 탁구장은 즐거움을 줬다. 좋아하는 탁구 실컷 쳐보자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탁구는 부인 이 씨가 먼저 배웠다. 1998년 달서구 생활체육회 탁구연합회에 가입한 게 계기가 됐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진득하게 하지 못했다. 테니스, 볼링 등 여러 종목에 도전해봤지만 얼마 안 돼 포기했다. 근데 탁구는 달랐다. 편두통에다 찬바람 불 때면 감기를 앓았던 이 씨는 탁구를 시작한 이후 잔병에서 탈출했다. 탈모증상도 씻은 듯 없어졌다. 무릎, 허리 통증도 없어졌다. 그녀에게 탁구는 만병통치약에다 건강보조제가 됐다.
저녁에 문을 여는 호프집 영업시간 때문에 낮 시간을 헬스로 때웠던 남편 이 씨는 부인을 유쾌하게 한 탁구의 비밀을 캐려고 탁구장을 따라갔다 그 길로 입문했다. 3년 늦은 출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일찍 탁구를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할 만큼 너무나 매력적인 운동입니다."
부부는 그때부터 1년 중 설, 추석 명절을 제외하고는 탁구장에서 하루 3시간을 보냈다.
이 씨 부부의 탁구장에는 동네대회서부터 전국대회까지 각종대회에서 획득한 각종 트로피가 잔뜩 진열돼 있다. 남편 이 씨는 2009년 문광부장관기 국민생활체육 전국시도탁구대회에서 우승한 전력에다 그해 생활체육 50대 탁구국가대표로 선발돼 중국에서 열린 한중 생활체육 교류전에 다녀오기도 했다. 부인 이 씨 역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부인은 드라이브를 주무기로 한 공격형, 남편은 공을 받아쳐 넘기는 수비형이다. 여자 1부는 남자 4부와 같아 둘이 시합(11점)을 할 땐 남편이 3점을 접어준다. 결과는 부인의 승리가 많다.
실력을 쌓기까지는 혼신의 노력이 필요했다. "1, 2년 쳤을 때 잠시 우쭐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청소년 대표를 지낸 선수와 한번 붙어봤어요. 21점 내기 5판3선승제였는데 19점을 접어주더군요. '세트 당 2점만 따면 이기는 데'하고 속으로 웃었죠.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죠. 3판 동안 제가 뽑은 점수는 단 1점, 그것도 빗맞아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공이 가는 바람에 획득한 점수였죠."
수치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오기가 발동해 그때부터 라켓을 놓지 않았다. 호프집 영업을 마친 오전 3시, 집에 돌아와 동틀 때까지 비디오를 보며 손동작, 발동작을 분석했다. 침대 위에서 서브 연습도 쉼 없이 했다. 그 덕에 처음 발을 디뎠던 달서구의 한 탁구장 회원 120명 중 최하위였던 실력은 5년 만에 정상까지 오르는 결실을 맺었다.
"그땐 정말 열심히 연습했죠. 이기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승부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치는 게 더 재밌어요. 조금씩 내공이 쌓인 것이겠죠."
부부는 탁구에서 사람냄새를 맡는다. 상대를 마주보고 하는 탁구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자신을 낮추는 마음 없이는 즐기기 어렵다는 게 부부의 지론이다.
"상대의 공을 받아보면 '저 사람이 나를 이기려하는구나', 또는 '나를 깔보고 대충치고 있구나'를 대번 알죠. 그때 기분대로 쳤다가는 싸움이 나거나 기분을 망쳐버리게 되죠."
탁구는 부부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줬고, 감정의 소통을 놓는 다리가 되기도 했다. 부부싸움을 했을 때 화해를 시켜준 건 "탁구 하러 가자"는 말 한마디였다. 그래도 혼합복식만은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잘못을 미룰까봐서라는 게 부부의 답이다.
부부는 2007년 12월, 대구에서 유일하게 생활체육 연합회가 구성되지 않은 달성군의 탁구연합회를 만들었고 지금 남편은 회장, 부인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남편은 대구의 탁구장 운영자들의 모임 회장도 겸하고 있다. 부인은 지도자자격증을 획득해 초등학교와 복지관에 탁구 강사로 나가고 있다.
탁구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듯, 많은 사람에게 탁구의 기쁨을 주고 싶다는 게 부부의 포부다. 전국 곳곳의 탁구장을 찾아가 시합을 하며 친선을 도모하고 싶다는 것.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아하는 탁구로 많은 사람도 만날 수 있으니 노후 설계치고는 꽤 괜찮아 보였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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