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난 법정 스님의 상좌로 길상사 주지를 맡아오던 덕현 스님이 최근 주지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두 해 가까이 길상사에 머문 그는 떠나는 마음을 글로 남겼다. 산중의 한거에나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도심의 도량에 나앉아 크고 복잡다단한 요구와 주문들에 시달려야 했다는 그는 가장 어려웠던 일들을 이렇게 말했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욕심과 야망,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我相)들이었다."
욕심과 질투, 불통과 갈등의 충돌은 스님을 둘러싼 세계도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스님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도심을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이라며 떠나겠다고 했다.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는 중동에서도 리비아의 사정은 심각하다. 시위 열흘째에 일부 군과 공무원, 부족의 반발로 내전 위기까지 치닫고 있다. 시위 진압에 전투기와 헬기까지 등장했고 카다피 국가원수가 자국 내 석유 생산 시설 파괴를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다수의 요구에 '권한은 내 것'이라며 소통 대신 억압과 불통으로 맞선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거 돈은 되나'가 입에 발린 말이 됐다. 성공의 잣대인 돈이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는 것도 판가름을 낸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없어졌다는 말이 유행한다. 그러나 돈의 위세에도 여전히 관의 힘은 세다. 정복 경찰을 불쑥 마주칠 때 가슴이 철렁하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됐지만 각종 권한을 행사하는 관은 2011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에서 아직 실력자의 자리를 지킨다. 결정권을 가진 높은 분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법을 내세워 하급 관리들도 제 할 말을 한다. 지방자치를 한 지 20년 가깝지만 돈과 권한을 쥔 중앙 정부의 힘은 막강하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중앙 정부의 결정에 돈 없고 약한 지방은 울고 웃는다.
돈과 권력은 둘 다 좋지만 가지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소수에게 집중된다. 가진 사람은 놓치지 않으려 하고 못 가진 이들은 가지려 하다 보니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말로는 상생과 소통을 외치지만 갑과 을의 구분은 확연하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대기업 초과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는 이익 공유제를 마련할 계획"이라는 폭탄성 발언도 양극화로 인한 다툼을 막아보자는 발상에서 나왔다. 여야 정치권의 무조건적인 다툼도 돈과 권한의 쏠림에서 비롯되고 국가 균형 발전의 선언에도 불구, 중앙 정부는 아직 지방의 목줄을 쥐고 있다. 돈과 권한의 양극화와 쏠림 현상이 소통을 국가적 화두로 만든 것이다.
신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서울과 영남의 생각이 같지 않고 대구와 부산이 경쟁한다. 과학벨트 입지를 둘러싼 논란은 세종시를 떠올리게 한다. 약속을 했던 분은 '표 때문에'로 둘러대고 결정권을 가진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시간을 끈다. 신공항을 바라는 영남 사람들의 사정은 절실하다. 특히 다른 시도에 뒤처지고 있는 대구경북에 있어 하늘 길은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사다. 절박한 영남의 바람에도 중앙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소통은 연습이다.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하다. 남의 말을 듣고 남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소통은 역부족이다. 대화와 소통에서 허풍은 금물이다. 소통은 쌍방통행이다. 허황된 약속과 거짓말은 불신만 키우고 소통은 실천 가능한 일에서 출발한다. 소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부도날지 모를 헛약속을 믿고 가만히 있었다면 헛일을 한 것뿐이다.
정치에 있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 단체장이 기마전의 기수라면 국민은 기수를 떠받치는 말의 역할을 한다. 말이 흔들리면 기마전은 필패다. 그래서 국민은 을이 아니라 갑이다. 정치인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과 질타는 결국 갑의 잘못 때문이다. 소통의 정치가 미래를 좌우한다면 갑인 유권자의 고심은 더 깊어져야 한다. 헛말에 덩달아 춤을 추고서는 기대할 게 없다. 소통은 정치인 대기업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다.
徐泳瓘(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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