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면 너무 비약적인 비유일까?
동일한 건축공간, 동일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그 구성원은 살아가는 외형적 습성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까지도 닮는다. 서로 닮는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그 건축공간, 그 지역의 여러 가지 환경적 조건에 지배를 받아 바뀐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건축이 좋은 삶을 만들며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만든다. 물론 여기서 좋고 나쁨이 비싸거나 화려함으로 전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공간은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거나 거짓된 것으로 만들기 십상이며, 오히려 검박(儉朴)하고 단출한 공간이 우리의 삶을 더 진솔하고 올곧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건축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즉각적이지 않아 느끼기에 더딜 뿐이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절대적이다. 그래서 건축은 우리들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자로 '建築'(건축)의 '세우고 쌓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건축의 물리적 행위만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 삶의 질과 직결되고 행태(行態)를 지배하는 건축의 본질적 의미를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집을 '세우고 쌓는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했다. 이는 집을 짓는 행위가 물리적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과 과정에 철학과 사상을 가미한 오묘한 진실을 담고 있음을 뜻한다. 흔히들 건축을 '예술'로 분류하면서, 지난 시대 '공학'으로의 분류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며 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는 또 다른 오해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삶을 그 비례대로 더욱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단의 가치로 본 공학으로의 분류가 잘못된 것이고, 예술로의 분류 또한 건축 속에 닮긴 삶이 주가 아니라, 건축을 하나의 오브제로 외관이나 모양, 색채와 장식 등을 기준 삼은 것이기에 올바른 분류가 될 수 없다.
좋은 삶을 위한 좋은 건축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그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와 가치가 되는 합목적성(合目的性)과 당시의 시대 배경(양식, 사상, 풍속 등)과 기술력(재료, 공법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기억장치로서의 시대성(時代性)이 잠재되어야 하고,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으로 그 장소(場所)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좋은 건축의 목표는 당연히 우리 삶의 가치에 대한 확인이며 그 속에서 늘 새롭게 변화될 우리의 좋은 삶이다. 나는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 중 하나이기에 건축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한순간의 즐거운 취미 또는 비즈니스적 가치로만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 건축 속에서 영위될 이웃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우환미술관 건립이 우리 대구지역에서 본격 추진된다고 한다.
반가우면서도 한편 씁쓸한 마음인 것은 로컬 건축사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초대된 일본의 유명 건축사를 시기해서가 아니라, 미술관 건축이 갖는 건축적 의미와 가치가 클수록 그 축제의 장에서 소외된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축하고 가동 중인 건설 시스템(혹은 절차)으론 좋은 건축(이우환이 원하는 건축)을 가려낼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고,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점을 자명하게 알면서도 선뜻 나서 고칠 수 없음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음이다. 자기 부정을 통한 변화여야만 그 가치와 진정성이 살아날 수 있기에 우리 모두의 성찰이 있어야만 한다. 오랜 기간 잘못 길들여진 우리의 시각으론 참으로 얻기 힘든 결론이겠지만 그 답은 의외로 기본과 본질 추구라는 진정성의 회복이다.
건축의 윤리는 미학의 존재 유무와 무관하게, 그 건축이 시대와 장소, 그리고 그 목적에 철저히 부합되면서 진지하고 성실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구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진정한 건축이 사유의 결과로 보편을 기반으로 설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건축 속에서 만들어지고 길들여지는 우리의 삶도 분명 진실되고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김홍근(ADF건축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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