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3월이 오면 1

"올해 만나는 30여명의 아이들은 어떤 꿈을 가졌을까?"

♥똑같은 책상에 앉아 있지만 꿈은…

한 해의 시작은 분명 1월이지만 왠지 3월은 우리들 마음속 출발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리고 3월이 오면 난 늘 똑같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올해는 어떤 아이들과 어떻게 1년을 보내야 할지 그리고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 대해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어디까지 간섭해야 할지를 늘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3월이 오면 난 언제나 똑같은 병을 앓곤 하지만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정답이 없어 늘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가 바뀔 때마다 몸과 마음이 변해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실험을 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35명이 넘은 아이들 마음속을 일일이 다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3월은 미지의 세계로 초대를 받았지만 낯선 선생님과 낯선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늘 긴장되어 있다. 나 역시 낯선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첫 만남을 해야 할지 늘 걱정이다. 그래서 나는 3월 한 달을 꼬박 상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곤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똑같은 의자와 똑같은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교실 속 아이들의 생각과 꿈들은 모두가 제각각이다. 자라온 환경이 남달라 나에게 찡한 감동을 전해 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며, 자신의 처지를 숨기고 자신의 모습을 한사코 부정하려고만 하는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낮은 곳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위해 한평생 봉사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가난한 오지의 나라를 찾아가 고 이태석 신부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난 마음의 큰 부자로 변신하곤 한다. 3월이 주는 나만의 특별한 특권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또다시 씨름하다 보면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 어김없이 똑같은 아쉬움을 남기고 아이들은 내 곁을 떠나지만 이 아이들이 나로 인해 그들 마음속에 커다란 느낌표 하나 마음속 깊이 새기고 떠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성백광(대구 북구 구암동)

♥ 공부 열심히 한다고 약속하는데…

3월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새 학기를 맞는 아이들의 설렘과 기대를 엿볼 수 있는 시기다. 몇 해 전 아이가 학교가기를 꺼리더니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아파트 주변을 함께 돌면서 찬찬히 물어보았다. 이유는 '친구와 둘이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는데 친구는 가만있게 하고 저 혼자만 손들고 벌을 섰다'고 했다. 공정하지 못한 벌에 아이가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듬해 3월이 오면 전학하자고 해놓고 인근의 초등학교를 견학하며 다니고 싶은 곳을 골라보라고 했다. 아이가 고른 학교는 볕 잘 들고, 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고 자연학습을 쉽게 할 수 있는 아담하며 학급수 적은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급히 이사를 하였고, 아이가 처음엔 낯설어하더니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신나게 학교 가는 모습을 베란다 넘어 쳐다보면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급히 이사를 하느라 조금 비싸게 구입한 집값이 아깝기보다 훨씬 값진 것을 얻은 셈이다. 어느덧 두 해가 지났고 또 다른 새 학기를 맞게 된 아들, 이제 친구랑 조금 적게 놀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기를 몇 번을 강조했더니 새 학기부터는 엄마와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했다. 봄 방학 끝나는 날까지 신나게 놀아야겠다며 축구화 끈을 조여매고 나가는 아들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아들아, 3월이 오면 너의 봄날은 갈 것이다.'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지 아비 입학식 날 아직도 생생

작은 손자가 놀다간 자리에 가재손수건이 떨어져 있다. 침 받이로 목에 둘렀던 것이라 세탁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에 어느새 세월이 착착 포개져 전형적인 할머니의 주름살이 보인다. 여태 한집에 살다가 분가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도 손자가 보고 싶은지! 방금 떠났는데 또 보고 싶은 걸 보니 나는 분명 할머니가 맞나 보다. 내 아들 키울 때도 저런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가 싶다.

큰 손자의 입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가까이로 이사를 하였으니 이제 이 할미가 손자 보러 가야겠다.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니 지난날 지 아비의 입학식 날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왼쪽가슴에 명찰을 달고, 오른쪽 가슴 쪽에는 하얀 코닦이용 손수건을 핀으로 꽂아주며 어서 1학년3반 교실로 들어가라며 등 떠밀던 때가 엊그제 같다.

입학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손잡고 오던 날 손수건은 코를 하도 많이 닦아서 반질반질한대도 여전히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뒤따라오시던 어머님께서 월남치마를 휙 뒤집어 아이의 코에 대고 '코를 휑 풀어라'고 하셨던 것이 어느새 3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아이가 벌써 학부형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아이의 가방을 사고 입학 준비물을 구입한다고 서둘러 나간 자리에 작은 손자의 손수건을 남겨놓고 간 것이다.

세월이 하도 빨라 하룻밤 자고 난 것만 같다. 3월이 오면 이 손수건을 직사각으로 접어서 손자의 입학식에 가 봐야겠다. 봄날 어미 따라나선 병아리처럼 종종걸음으로 담임선생님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갈 적에 호주머니에 넣어주어야겠다. 찬바람에 콧물을 흘릴지도 모르니까.

공순득(대구 서구 내당3동)

♥"아버님 방에 봄 넣어 드려야지"

다리 골절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께서는 매서운 칼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면서 이번 겨우내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하셨다. 혼자 집안을 깨끗이 치운다고 걸레질도 하시고 창문도 가끔 열고 하시지만 다니러 갈 때면 환기 부족으로 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만다. 목욕탕을 보내드리고 청소를 해보지만 추운 겨울 날씨에 공기정화는 데워진 방이 식어 버릴까 문 열기 바쁘게 닫고 만다. 늘 찜찜한 청소를 마치고 나면 기다려지는 건 봄이다.

따분한 주말 우산을 쓰고 아들 녀석이랑 외출하는데 매화나무에 매화꽃망울이 곧 터질 것 같았고 산수유나무에도 제법 노란 꽃봉오리가 눈에 띄었다. 꽃망울을 본 탓일까 춥다는 느낌보다는 빗물을 한껏 머금은 대지에서 뭔가 꿈틀거리면서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봄이 오긴 오는 가보다.

나도 날 잡아 겨우내 찜찜하던 아버님댁에 상큼한 봄을 불어 넣어 볼 생각이다. 3월이면 너희들도 개학할 테고 조용한 낮 시간을 빌어 엄마는 할아버지 댁 가서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겠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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